[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트로트가수 진성이 고행의 인생사를 고백했다.
25일 방송된 SBS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니'에서는 진성이 김수미를 만나기 위해 출연했다. 진성은 김수미가 차려준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보릿고개 시절 사람이라 반찬이 세 가지만 넘어도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불우한 가정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성은 세 살부터는 부모님이 없이 자랐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와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으려 진성을 두고 떠났다고.
진성은 "홍역도 앓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안 계셨다. 저는 홍역 주사를 30대 중반에 혼자 병원에 가서 맞았다"며 그 후 8년간 친척집을 전전하며 호적에 오르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함께 했던 할머니는 진성이 네 살때부터 중풍을 앓았고 2~3년 뒤에는 돌아가셨으며 진성은 초등학교도 제때 들어가지 못해 14살 때 4학년으로 월반했다고. 진성은 "고아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 '차라리 나를 버릴 거면 보육원에 버리고 가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성은 11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와 다시 만났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시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결국 1~2년 만에 헤어지고 말았다고. 진성은 "외삼촌이 어머니를 데리러 왔다. 하지만 나는 다시 어머니와 헤어질 게 두려워서 흙길을 따라 갔다. 어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고, 외삼촌은 버스 타기 전 나를 밀어버렸다. 그때 '내가 당신들을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저 사람들은 내 부모가 아니라 원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진성은 서울로 향하게 됐다. 진성은 14살 때부터 중국집 배달원과 야간업소 등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고, 1997년에는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안동역에서', '보릿고개' 등의 곡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사이 또 불행이 찾아왔다. '안동역에서'를 공개한 뒤 1년 6개월 만에 림프종 혈액암과 심장 판막증 진단을 받은 것. 진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사형선고였다. 인생이 여기서 끝날 거라 생각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
진성은 이어 아내에 대한 마음도 고백했다. 진성은 "아내가 병실에 있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왜 내게 이렇게 고통을 줄까. 내일 아침 어디라도 떠나버릴까' 별 생각을 다 했다"는 속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건강이 호전됐고, 진성은 "림프종 혈약암은 완치가 없다. 체력에 맞게끔 활동하고 있다"고 현재 건강 상태를 설명했다.
'안동역에서'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진성은 TV CHOSUN '내일은 미스터 트롯'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며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기도 했다. 진성은 후배들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후배로는 정동원을 꼽았다. 진성은 "정동원군이 가정적으로도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더라. '보릿고개'를 부르는데 45년 전 내 유년시절을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처량하게 노래를 부르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어 "커서는 트바로티 김호중"이라며 "김호중 역시 만만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김호중이 부른 '태클을 걸지마'를 듣고 용돈을 줬다는 진성은 "자장면 값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장 줄까, 두 장 줄까 전날 고민했다. 새가슴이라 큰 돈은 못 준다"고 말했다. 작은 용돈이라도 후배들을 사랑한 마음이 드러난 대목.
진성은 '미스터트롯' 후에도 후배들과 예능을 통해 친해졌다며, 나태주와 신인선은 진성의 집에도 놀러올 정도로 친한 후배들이 됐다고 했다. 즉석에서 전화연결이 이뤄졌고, 진성의 전화를 받은 나태주와 신인선은 곧바로 촬영장으로 달려오며 의리를 과시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