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스포츠 시계가 멈췄다.
비단 경기장 만이 아니다. 스포츠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업들도 멈춰 섰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있다. 몇몇 구단은 파산 이야기까지 나온다. 구단 수뇌부들은 자연스레 구단 운영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에 손을 대고 있다.
비교적 잠잠하던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축구가 가장 먼저 침묵을 깼다. 대한축구협회, 프로축구연맹이 임직원의 임금 삭감을 한 것을 시작으로, 울산 현대와 부산 아이파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선수들이 아닌 직원들이 임금을 '자발적으로' 깎았다. 임원이 20%, 직원이 10%의 임금을 삭감하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대한축구협회의 수장 정몽규 회장은 부산의 구단주, 권오갑 연맹 총재는 울산의 구단주다. 직원들의 임금을 최대한 보존해주려는 유럽과 전혀 다른 행보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엄연한 현실이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모기업과 지자체의 재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다. 많은 그룹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예산의 상당부분을 긴급재난기금으로 지급한 지자체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수원FC 선수단이 움직였다. 수원FC는 14일 '수원FC 선수단이 4월부터 보수의 10%씩 모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원시민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단이 임금 삭감에 나선 것은 수원FC가 처음이다. 김호곤 단장과 김도균 감독을 비롯해 코치진과 선수단 전원이 동참했다. 더 눈여겨 볼 것은 삭감한 돈의 사용법이다. 구단 반납이 아닌 기부를 택했다. 수원FC는 "코로나19로 고통을 겪는 지역 소상공인과 저소득층 등에게 작으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선수단의 보수 일부를 내놓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수원FC 선수단은 투명한 기부를 위해 모금한 돈을 수원시에 전달할 예정이다.
수원FC 선수단이 기부를 고심한 것은 2주전이었다. 평소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던 김도균 감독이 '주장' 이한샘과 미팅을 갖고 임금 삭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김 감독은 "시민 혈세로 운영되는 시도민구단인만큼 우리도 전향적으로 검토해보자"고 운을 뗐다. 하지만 강요는 할 수 없는 노릇. 그 다음부터는 선수단에게 맡겼다. 이한샘을 중심으로 선수단이 논의를 시작했다. 쉽지 않았지만, 의외로 빠르게 '삭감' 쪽으로 결정이 났다. 이후 삭감 규모부터 향후 모금한 돈의 활용 방식까지 모두 선수단이 결정했다. 10%로 가닥이 잡혔고, 어차피 시에서 지원금이 나오는만큼 다시 시에 돌려주는 것보다 직접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났다.
이 과정에서 3000만원 이하의 저연봉자는 이번 삭감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들에게 10%는 큰 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연봉자들 중에서도 함께 동참하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전적으로 자기 의지에 맡기기로 했다. 김 감독은 "단돈 5만원, 10만원이지만 함께 하고 싶은 선수들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고 했다. 김 감독과 선수단은 지난주 금요일, 김호곤 수원FC 단장을 찾아가 이같은 내용을 전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김 단장은 생각지도 못한 선수단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그 자리서 자신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 단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서로 돕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선수들이 스스로 이런 결정을 내려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수원FC는 선수단의 결정과 별개로, 직원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엇다. 직원들의 삭감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기부를 원할 경우, 선수단과 다른 곳에, 다른 형태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단장과 김 감독은 이구동성으로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김 단장은 "'축구인'도 사회구성원이다. 팬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고, 사회가 있어야 축구가 있다. 축구인 후배들이 먼저 이런 생각을 했다는데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많은 돈을 벌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액수가 아니라 어려운 시기, 함께 어려움을 넘으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여러모로 힘든 코로나19 정국 속, 수원FC의 행보가 모처럼 미소를 짓게 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