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처음엔 잠도 안왔죠."
김길식 감독(42)이 지난 겨울 안산 그리너스 첫 지휘봉을 잡았던 때의 막막함을 털어놨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안산을 5위에 올려놓은 임완섭 전 감독이 인천으로 가면서 지난해 12월 전격 부임했다. 베스트11 중 간판급 7~8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라울, 빈치씽코 등 외국인 공격수들도 이적한 상황. 새선수 구성이 이미 끝난 가운데 동계훈련 캠프에 합류했다. 김 감독은 "처음엔 베스트11을 짜는 데도 애를 먹었다. 터키 첫 전훈때는 잠도 안왔다"고 했다.
안산은 1월14일부터 2월14일까지 터키에서 1차 동계훈련, 2월 전남 강진에서 2차 전지훈련을 마무리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 개막이 미뤄지며 4월까지 안산에서 주 5일 훈련을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김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 출신이다. 전남, 제주, 대전 미드필더 출신으로 2007년 루마니아리그에서 맹활약한 특별한 이력도 있다. 프로와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섭렵한 김 감독은 "우리 팀에 대해 단순한 낙관론보다는 최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면서 "우리 스쿼드가 기업구단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선수들이 많은 만큼 스피드, 활동량과 체력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이 훈련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스피드'. "생각의 속도, 운동장에서의 움직임이 모두 빨라야 한다. 내가 원하는 축구는 속도 있고 공격적인 축구"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팀을 상대로 마냥 '닥치고 공격'으로 밀어부칠 수만은 없는 현실. 김 감독은 "우리 스쿼드의 장단점을 냉정하고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한 전술을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시즌을 앞두고 안산은 든든한 주장 이인재를 중심으로 스리백을 장착했다. 김륜도, 김경준 등 검증된 공격 자원에 수원 삼성에서 영입한 김진래, FC서울에서 임대로 온 신재원 등 '굶주린' 젊은 피에 기대를 건다. 외국인 공격수는 4인4색이다. 콜롬비아 출신 20세 공격수 브루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 출신 공격형 미드필더 발레아,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알려진 레바논 국대 공격수 사드, 1m97의 브라질 출신 '괴물 피지컬' 펠리팡으로 구성됐다.
김 감독은 '굶주린' 선수들의 간절함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부분 프로 경험이 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많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 만큼 한번 분위기를 타면 폭발력과 함께 끈끈한 힘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훈련은 거칠게 파이팅 있게, 분위기는 밝게 재미있게"가 모토인 김 감독은 때로 훈련장 DJ를 자청한다. BTS의 'DNA'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등을 직접 선곡해 선수들의 흥을 돋운다. BTS의 히트넘버 '피, 땀, 눈물'처럼 올시즌 김 감독이 제시한 안산 그리너스의 슬로건은 "피의 열정, 땀의 노력, 눈물의 승리"다.
1978년생, 올시즌 김남일 성남 감독, 설기현 경남 감독, 김도균 수원FC 감독 등과 함께 40대 초반 젊은 사령탑 열풍을 대표하는 김 감독의 코칭철학은 프로페셔널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 선수들에게 프로로서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려고 한다. 평소엔 눈치 보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생활하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프로답게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열정적으로 뛰자는 것"이라고 했다. 코치들을 향한 "선생님"이라는 깍듯한 존칭 역시 화제가 됐다. 김 감독은 "모두 안산이라는 팀을 돕기 위해 오신 귀한 분들이다. 팀의 모든 것을 의논하고 소통하고 '선생님'들과의 집단지성을 통해 답을 찾고 결정한다. 수평적 관계는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시민구단 사령탑으로서 김 감독의 책임감은 확고하다. 김 감독은 지난달 25일 코로나19 속 안산 시민들의 고통을 나누고자 자비를 털어 500만 원 성금을 기부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힘든 시기에 시민축구단 감독으로서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새시즌에도, 안산 시민들을 위해 포기를 모르는, 희망의 축구를 다짐했다. "우리는 시민구단이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질지언정, 시민들에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축구, 휘슬이 울릴 때까지 희망을 놓지 못하는 근성 있고 감동 있는 축구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