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LG 트윈스 류중일 감독은 공이 빠른 투수를 좋아한다. 제구보다는 스피드가 좋은 투수의 기본 조건이라고 보는 사령탑중 하나다. "투수는 무조건 공이 빨라야 돼"라고 했다.
류 감독은 지난 24일 자체 청백전 도중 덕아웃에 있다가 이상규(24)가 등판하자 갑자기 포수 뒤쪽 백네트로 가더니 그의 투구를 유심히 지켜봤다. 전지훈련 연습경기에서 최고 150㎞를 찍었던 이상규가 청백전에서 잇달아 호투하자 류 감독이 깊은 관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상규는 3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청백전에 처음으로 선발로 나가 3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잘 던지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총 46개의 공을 던졌고, 직구 최고 스피드는 147㎞였다. 이상규는 6차례 연습경기에서 9⅔이닝 5안타 2실점(1자책점)을 기록중이다. 4,5선발을 아직 정하지 않은 LG는 이상규가 선발후보로 꼽힐 수 있다. 이상규는 이날 경기 후 "불펜에서 시작해도 시즌 중에는 선발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류 감독은 " 아직 선발 후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오늘은 50구까지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2015년 청원고를 졸업하고 입단한 이상규는 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2018년 복귀해 지난해 1군에 데뷔했다. 신인이나 다름없다. LG에는 이상규처럼 빠른 공을 던지는 신인 투수가 또 있다. 휘문고 출신의 올해 1차지명 이민호(19)다.
이민호도 최고 150㎞의 빠른 공을 던지는 유망주다. 최근 연습경기 내용은 좋지 않지만, 빠른 공을 씩씩하게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민호는 청백전에 2차례 등판해 2⅓이닝 7안타 4실점을 기록했다. 청백전서 직구 최고 구속은 147㎞. 류 감독은 이민호의 첫 실전 투구를 본 뒤 "이민호는 첫 등판이었는데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퓨처스에서 선발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류 감독은 이상규는 '즉시 불펜 전력', 이민호는 1~2년 뒤 '붙박이 선발'로 분류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두 선수는 결국 LG의 선발 마운드를 책임져야 한다는 기대감이 구단 내부에서 느껴진다. 둘다 150㎞에 이르는 빠른 공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능력도 갖추고 있어 대형 선발투수로 클 자질은 충분하다.
LG는 토종 선발이 빈약한 대표적인 팀이다. 2008년 이후 시즌 10승 이상을 올린 LG 토종 투수는 봉중근 박현준 류제국 우규민 차우찬 임찬규 등 6명이다. 이 가운데 프랜차이즈 신인으로 입단해 주축 선발로 성장한 투수는 우규민, 임찬규 둘 뿐이다. 이 둘마저도 활약상은 '반짝'이었다.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우규민은 기량 쇠퇴가 뚜렷하고, 임찬규는 2018년 첫 풀타임 선발로 11승을 따냈을 뿐 지난해 3승에 이어 올해는 선발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토종 선발투수가 지난 10여년간 없었다는 얘기다. 1990년대 이상훈 김용수 임선동, 2000년대 이승호 장문석 이후 이 명맥은 끊어졌다고 봐야 한다. 특히 수년간 150㎞ 강속구를 뿌리며 LG 선발 마운드를 지킨 투수는 이상훈이 마지막이다.
류 감독은 임찬규에 대해 "찬규가 예전엔 공이 빨랐던 친구로 기억한다"면서 선발 기회를 계속 주고 있다. 류 감독이나 LG 모두 선발 파워피처에 대한 향수, 갈망이 깊다. 이상규와 이민호에게 기회가 주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