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지역 여자축구 명가' 삼례여중 축구부가 20년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꿈나무의 산실인 중학교 여자축구부가 해체 위기에 놓이면서 16명의 어린 선수들이 하루아침에 갈 길을 잃었다. 가뜩이나 열악한 여자축구 저변은 더욱 악화되게 됐다.
지난 2000년 창단된 삼례여중은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여자축구 명가다. 단 13명의 선수로 2009년 여왕기전국대회 우승을 빚은 고(故) 김수철 감독의 감동 실화에 바탕한 영화 '슈팅걸스'는 2017년 개봉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올해 삼례여중이 삼례중과 통합 이전되면서 삼례여중 축구부에 위기가 닥쳤다. 삼례여중이 훈련용으로 쓰던 인조잔디구장과 훈련 보조시설들은 지역 청소년문화시설로 전환된다. 새로 이전하는 삼례중의 천연잔디 운동장은 여자축구 선수들의 훈련에 적합하지 않다. 합숙소는 금지됐고 여자축구부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전무하다. 학교측과 전북교육청은 "교육부 정책과 규정이 초중학생들의 합숙을 금지하는 것"이라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개학이 임박할 때까지 축구부 운영 계획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학부모들은 '극약처방'을 내렸다. 학교측의 성의 있는 결정을 이끌어내고자 '축구부 해체 결정문'을 제출했다. 당장 훈련할 운동장도 없고, 맘 편히 쉴 공간도, 합숙소도 없고, 이러다 경기도 나서지 못하게 되면 한창 기량이 성장할 나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급박함이었다. '이렇게 운영하려면 전학이라도 가게, 차라리 집어치우라'는 성난 부모마음으로 던진 '축구부 해체 결정문'은 오히려 해체를 앞당기는 도화선이 됐다. 삼례중은 10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고 '축구부 해체' 안건에 대한 심의 결과 축구부를 폐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원해서 축구부를 없앤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운동부를 운영하는 것은 해당 학교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축구부 해체를 결정했으면 그것이 최종결정이다. 교육청 결재 절차는 없다"는 말로 삼례여중 축구부 해체를 기정사실화했다. 전북 도내 유일한 중학교 '여자축구팀'이 사라졌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삼례여중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자축구를 비롯한 대다수 비인기종목의 경우,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중학교의 경우 집 근처 근거리 배정이 원칙이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여학생은 집 근처에 중학교 여자축구부가 없는 경우, 여자축구부가 있는 중학교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야 한다. 다행히 원하는 학교를 찾을 경우에도 '위장전입'은 불가피하다. 주소지를 이전해 해당 학교로 배정받는 '편법'을 쓰지 않으면 원하는 축구를 계속할 수 없다. 학교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족이 이사하지 않는 한 지방에서 삼삼오오 꿈을 찾아 모여든 학생들에게 합숙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런데 학교체육진흥법상 중학교 합숙은 금지돼 있다. 법을 어기지 않고는 축구를 할 수 없는 현실, 학교측도 교육청도 이래저래 복잡하고 귀찮은 축구부 운영에 몸을 사린다.
삼례여중 축구부의 한 학부모는 학교측의 해체 결정에 망연자실했다. "축구를 하고 싶은 우리 아이들이 강원도, 경상도 등 전국의 학교를 찾아 또다시 위장전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2명은 이미 축구를 포기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 딸은 초등학교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다른 도의 중학교에서도 오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고향인 전북 지역에 있는 삼례여중을 택했다. 학교측에서 입학전 미리 해체 방침을 알려줬더라면 절대 딸을 이 학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축구가 제일 좋다는 딸은 지금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혼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절절한 심정을 토로했다
정부는 각 지역 스포츠클럽을 통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존의 학교체육 시스템을 대체할 만한 혁신적인 시스템을 확립하기까지 절대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에도 아이들은 자란다. 미국과 북유럽처럼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는 일이 낯설지 않고, 여자들이 모여 축구하는 일이 흔한 일상이고, 집 근처 스포츠클럽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축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은 '가야할 길'이지만 아직은 '먼 미래'다.
앵무새처럼 '모두의 스포츠'를 노래하지만 여학생 체육의 현실, 여자축구의 현장은 암울하다. 대한축구협회 등록선수 1400여 명에 불과한 저변 속에 대한민국 여자축구는 월드컵 2회 연속 진출, 아시안게임 3회 연속 동메달 역사를 쓰며 악전고투하고 있다. 당장 현장에 '있는 선수'도 살리질 못하는데, 여자축구 저변을 늘려야 한다는 외침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정책의 공백기, 축구를 하고 싶은 여중생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어린 선수들에게 '위장전입'의 편법을 조장하는 학교와 어른들의 정책은 과연 옳은가. 2020년 봄, '슈팅걸스'의 꿈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