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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생기에 스트레스도 잠재울 풍미 '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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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계절의 변이조차 느끼기 어렵다는 요즘이다.

재택근무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바깥 활동량이 크게 줄어든 탓도 있지만, 일단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도 더 그러하다.

3월 초순, 경칩(5일)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봄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바람도 차갑고 주변 풍광 역시 여전히 잿빛이다.

이 같은 간절기에 봄 느낌 물씬 나는 곳이 있다. 내륙에는 차밭이요, 바닷가는 감태밭이다. 두 곳 모두 초록의 싱싱함이 생기를 더한다.

특히 '갯벌의 밥도둑'으로도 불리는 감태는 겨울철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리나라 서해안 청정 갯벌을 초록으로 뒤덮어 볼거리를 제공 한다.

'감태(甘苔)'는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특유의 맛과 향이 압권이다. 갓 지은 쌀밥에 감태 한 장을 올려 싸먹게 되면 특유의 맛과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진다.

뿐만 아니라 컬컬했던 목을 말끔히 씻어준 듯 한 개운한 여운도 지속돼, 스트레스 많은 요즘 입맛을 되돌려 줄 별미로 권할 만하다. 글·사진 김형우 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잿빛 풍광 속에 만나는 초록빛 융단

이맘때 맛보면 좋을 제철미식거리를 들자면 단연 감태(甘苔)'를 꼽을 법하다. 특유의 달보드레 쌉쌀한 풍미가 입맛을 되살리기에 그만이다.

'가시파래'라는 또 다른 이름의 감태는 갈파래과에 속하는 녹조식물이다. 우리의 층남 태안, 서산, 전남 무안, 신안, 장흥 등 주로 서남해안 청정 갯벌에서 자생한다.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나고 그 향이 뛰어나 '감태(甘苔)'라는 이름을 얻었다.

감태는 겨울철 별미 해조류인 매생이 와는 좀 다르다. 질감부터가 거칠다. 올이 굵기 때문인데, 향도 한결 짙고, 색상은 밝은 초록빛을 띤다. 감태는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애용해 온 별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모양은 매산태(매생이)를 닮았으나 다소 거칠고, 길이는 수자 정도이다. 맛은 달다"고 적고 있다.

국내 대표적 감태 산지로는 서해안의 황금어장, 가로림만을 들 수 있다. 가로림만은 풍부한 어패류, 해조류가 자생, 양식되는 수산자원의 보고이다. 그 중에서도 충남 태안군 이원면 사창리(3리)가 감태 주산지다. 예전에는 마을 앞 저수지까지 바닷물이 들어차는 갯마을이었지만 이제는 간척농지가 펼쳐진 상전벽해의 터전이 되었다. 예로부터 감태가 많이 나는 포구라고 해서 과거엔 '태포(苔浦)'로 불렸다. 마을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젓만 떼면 갯벌에 나가 감태를 맷는데,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마을의 전통 생업이 되었다. 마을 주민 이을래 옹(73)은 "옛날 어르신들은 장화도 없이 감발치고 짚신 신고 얼음장 같은 갯벌에 그냥 나갔다. 지금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이 무렵 사창리 앞 갯벌에서는 목가적 풍광의 감태 수확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푸른 융단자락을 연신 들추듯 감태를 매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허리춤에는 광주리를 매단 노끈이 질끈 매어져 있다.

융단처럼 펼쳐진 감태를 뜯는 모습이 얼핏 수월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은 보기와는 딴 판이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은 몸을 가누기 조차 쉽지 않다. 거기에 찬 바닷바람은 피할 데 없고, 잠시 앉을 곳조차 없으니 뻘밭에서의 감태매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감태 채취는 간단치가 않다. 밑에 것은 질겨서 뿌리째 뽑지 않고 부드러운 윗부분 것만 조심스레 뜯어야 해 요령도 필요하다.

가로림만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는 고마운 평생직장이다. 겨울과 봄 사이엔 감태도 매고, 굴도 딴다. 꽃이 피면 바지락도 캐고, 낙지도 잡는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출근'을 해서 자식들을 다 키웠다.



▶초록의 생기에 껄끄러워진 미각도 돌린다 '감태'

채취한 감태는 현장에서 바닷물로 씻은 뒤 마을로 싣고 와 다시 깨끗한 민물로 세척한다. 사창리 감태가 고품격으로 통하는 것도 바로 민물 세척에 그 비결이 있다. 마을에 있는 옹달샘이 바로 그것이다. 옛 부터 '찬샘'이라 부르고 있는 이 샘에서 졸졸 흐르는 맑은 물로 감태를 떠야 모양이 고르고 건조 후 감태발에 달라붙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가정용 지하수나 다른 샘물로는 상품가치를 높일 수 없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감태를 채취하는 날이면 마을사람들이 찬샘에 모여 공동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제는 찬샘 원수를 간이 상수도를 통해 각 가정으로 공급, 집에서 작업 하고 있다. 주민 고령화로 인한 작업환경 개선차원이다. 이을래 옹은 "철분이 많은 물에 감태를 씻으면 감태발에 달라붙어 제 모양을 내지 못하는데 찬샘은 철분량이 적당한 것 같다"며 "감태 생산 가구당 2000~500만 원 가량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세척을 마친 감태는 물감태로 포장해 냉동보관하거나 건조시킨다. 감태김은 발로 얇게 떠 건조장에서 말린다. 예전에는 볕이 좋은 날 마을 양지바른 둔덕에 널어 자연 건조시켰지만 요즘은 흔치 않은 풍경이 되고 말았다.

무침용으로 쓸 감태는 두툼하게 말린다. 감태를 말리면 단맛이 더해진다. 감태는 어떻게 먹어야 제 맛일까? 주로 무침으로 많이 먹는다. 감태와 무채를 섞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낸다. 산지에서는 감태김치도 담가 먹는다. 조선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멸치액젓, 깨 등을 넣고 버무린 후 사나흘 숙성 시킨 뒤 상에 올린다. 밀가루 반죽에 섞어 부쳐 먹는 감태전도 별미다. 감태김은 굽지 않고 그대로 밥을 싸 먹는 게 맛나다. 구우면 쉽게 타거나 자칫 쓴맛이 돌기 때문이다.

한편, 사창 3리 40여 가구 중 감태를 채취하는 어민들은 7가구 남짓. 11월부터 이듬해 4월 초순까지 너댓달 동안 1가구당 1000톳(100장 묶음) 남짓 생산고 있다. 현재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감태는 100장 묶음 한 톳 당 평균 3만5000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장에서는 4만원을 넘게 받는다. 모두 자연산인 탓에 입소문을 듣고 찾는 미식가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태안에서는 서부시장을 찾으면 감태를 구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구운 감태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