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한국인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가 속출하면서, 해외여행 취소와 이와 관련된 환불·위약금 분쟁도 늘고 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여행업계에 '최대한 위약금 없는 환불'을 권고하고 나섰으나, 여행업계에 일방적 손해 감수를 요구할 수도 없어 난감한 입장이다.
1일 공정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1월 20일부터 2월 27일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해외여행 위약금 관련 민원 건수는 모두 1788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3배 증가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코로나19는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피한 '사고'이므로 위약금 없이 환불해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행사는 상품 약관을 따지며 위약금 완전 면제에 대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관련 해외여행 환불·위약금 갈등이 고조되자 중재에 나선 공정위는 지난달 27일 여행업협회 관계자들을 직접 만났다. 이날 공정위 약관심사과 관계자는 "한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강제격리, 검역강화 조치를 결정한 나라의 경우, 소비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니 위약금 없이 환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협회는 "최대한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한국인) 입국금지, 강제격리 국가로의 여행 취소는 위약금 없는 환불이 합리적이지만, 검역강화 단계에서는 여행이 가능한 만큼 해당 국가로의 여행 취소는 일반적 약관에 따라 위약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현재 협회 안에서도 회원 여행사의 규모나 재정 상태에 따라 위약금 면제 범위를 놓고 입장 차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환불 여력이 적은 중소형 여행사일수록 가능한 위약금 면제 국가의 범위를 좁혀 소비자와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또 협회는 대형 여행사라도 신혼여행, 전세기 여행 등 기획여행의 경우 '즉시 환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업체 사정에 따라 현지 여행사, 호텔 등으로부터 일단 환불을 받고나서야 고객에게 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휘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공정위로서는 여행업계에 위약금 면제를 권고할 수는 있으나 여행사와 소비자 사이에 성립된 계약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일방적 기준을 제시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며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본 여행업체들의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1일 오후 2시 현재 입국금지나 검역강화 등 한국발 방문객의 입국을 어떤 형태로건 제한하는 나라는 유엔 회원국(193개)의 3분의 1이 넘는 78곳에 이른다. 한국을 방문·경유한 외국인에 대해 입국 절차를 강화하는 나라도 43곳으로 늘었다.
코로나19 관련 해외여행 환불·위약금 분쟁은 국내 확진자, 한국인 입국 제한 국가 수에 비례해 당분간 더 크게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경우 29일(현지시각)부터 대구 지역에 대한 여행 경보를 최고 단계(여행 금지)로 높임에 따라 한국인의 미국 입국도 제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여행 취소 위약금 관련 개별 소비자와 업체가 원만하게 합의하지 못할 경우, 결국 소비자는 한국소비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 여행상품은 사적계약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코로나19로 여행뿐 아니라 돌잔치, 결혼식 등 소비자들의 위약금 분쟁이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태규 무소속 의원은 "가뜩이나 마음 졸이고 있는 국민이 금전적 피해까지 겪지 않도록 정부 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선 기자 alread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