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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일본문학 전문번역가의 유쾌한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권남희, 상상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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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 좀 읽었다는 사람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 있을까? 유명 일본 소설 10권 중 반에 '번역 권남희'라고 적혀 있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카모메 식당' 등 수많은 단편, '어른 여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마스다 미리 시리즈', 첫사랑하면 떠오르는 '러브레터' 등 현대 일본 문학의 수작들을 통해 '믿고 보는 번역가'로 입소문이 자자한 그가 내놓은 진솔하고 유쾌한 에세이다. '번역에 살고 죽고'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작가 특유의 유머가 가득하다. 읽는 내내 쿡쿡 웃음이 터진다. 늘 마감에 쫓기고, 더욱이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까지 병행해온 그의 꾸밈없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글을 읽다 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28년 차 번역가의 노하우와 번역을 시작하게 된 사연을 프롤로그에서 들려주고, '번역은 외국어 실력에서 시작해 한국어 실력으로 완성된다'는 고민도 던진다. 그리고 원작 작가의 습관이나 취향, 번역된 원고를 편집하는 편집자의 아이디어와 시선 등 번역이 완성되는 흥미로운 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하루키의 고민 상담소', 2장 '잡담입니다' 3장 '남희 씨는 행복해요?'는 주로 번역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작가와 편집자들과 만났던 에피소드와 작가들의 습관, 가치관, 인생관 등을 통찰하듯, 대화하듯 들려준다. 4장 '자식의 마음은 번역이 안 돼요', 5장 '신문에 내가 나왔어'는 가족과의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쏟아낸다. 마지막 장인 6장 '가끔은 세상을 즐깁니다'는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언어를 번역하는 일은 고통이 따른다. 어디까지가 직역이고, 어디까지가 의역인지에 대해 번역가들은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한다. 번역가 권남희도 그렇다. 잠을 자는 것조차 포기하고 번역에 매달린다. 그래서 그에겐 '새벽 3시'가 잠을 청하는 익숙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감동적인 작품을 번역할 때 희열을 느끼고 잘 맞는 작가의 글을 옮길 때 "마치 내가 쓴 글을 옮기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는 번역가 권남희. 좋은 작품을 원동력으로 오늘도 밤새울 힘을 얻는다는 그에게서 어느 작가 부럽지 않은 열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의 손을 거쳐 번역되는 언어들은 그물처럼 촘촘하게 문장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글 쓸 때도 번역할 때만큼이나 행복하다"고. 그리고 "멋진 성장소설 한 편 쓰는 게 꿈"이라고.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