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김용훈(39) 감독이 "한국 영화 역사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을 필사하며 영화 공부했다"고 말했다.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 스릴러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 비에이엔터테인먼트·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작). 2월 기대작으로 떠오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연출한 김용훈 감독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 대한 연출 의도와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했다.
일본 소네 케이스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흔들리는 가장, 공무원, 가정이 무너진 주부 등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행하는 최악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그린 작품. 영화 속 인물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궁지에 몰려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일 뿐,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 않다는 주제 의식으로 공감을 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통해 기존 범죄 블랙코미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새로운 구성과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 스타일리시한 미장센 등으로 보는 이들의 108분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신예 김용훈 감독은 첫 장편 상업 영화에서 호평을 얻으며 단번에 충무로 '기대주'로 등극했다. 더구나 공간과 미술의 디테일한 표현, 다양한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리는 자신만의 장기를 적극 활용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로 지난 2일 폐막한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Special Jury Award)을 수상, 첫 출발부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더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충무로 올스타전'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충무로 명품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극 중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연희 역의 전도연, 사라진 애인 때문에 사채에 시달리며 한탕의 늪에 빠진 태영 역의 정우성, 가족의 생계를 지키는 것이 전부인 중만 역의 배성우, 과거의 기억에 갇혀 버린 노모 순자 역의 윤여정, 빚 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미란 역의 신현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법체류자 진태 역의 정가람 등 탄탄한 이야기와 명배우들의 압도적인 열연까지 더한 완벽한 앙상블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날 김용훈 감독은 한국 영화 101년 역사 최초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물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국제영화상·각본상을 수상하며 역사의 획을 그은 봉준호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을 지켜보면서 정말 울컥했다. 사실 상상을 못 한 일이지 않나? 아카데미 자체가 워낙 보수적인 시상식이라 감독상과 작품상은 더구나 예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각본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각본상 수상 정도는 살짝 예상을 해봤다. 그런데 각본상은 물론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수상하다니. 이건 정말 대박이다. 나 뿐만이 아니라 영화계에 있는 모든 종사자들이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나 또한 앞서 로테르담영화제에 참석해 느꼈지만 전 세계적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과거에는 자막에 대한 부담감이나 한국영화가 가진 시네마틱한 편견 때문에 일부 영화인들에게만 관심을 받았는데 이번에 확실히 대중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았고 또 좋아해주더라. 특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바른손이앤에이 제작)은 오롯이 한국 스태프와 한국 배우로 만들어진 오리지널 한국 영화이지 않나? 한국 영화의 기술력이 금메달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한국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으로 프라이드가 생겼다.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와 또 한국 영화 스태프들, 배우들을 향해 인정해주는 격이니까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뿌듯해했다.
또한 "물론 봉준호 감독이 아닌 다른 한국 감독들은 덩달아 부담도 생긴다. 관객의 눈높이는 '기생충' 때보다 더 높아질 것이고 그 만족을 주기 위해 감독과 배우들은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작품이라도 '제2의 기생충'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으니까 자부심이 생기면서도 부담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용훈 감독은 '벌새'의 김보라, '사냥의 시간'의 윤성현 감독과 언론 보도를 통해 봉준호 감독의 뒤를 이을 한국 영화 기대주로 떠오르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중. 이에 "이것 역시 너무 부담된다. 우리 영화 제작사의 마케팅인지 모르겠지만 가당치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리틀 봉준호'라는 타이틀을 달면 일단 관객들은 내 작품을 '기생충'만큼 기대하고 오지 않나? 나는 그저 아직 초급 단계의 연출자인데 높은 기대치로 인해 우리 영화가 실망감이 커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단지 내가 그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개봉 시기가 잘 맞아서였던 것 같다. 시기가 맞아서 기사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그 무게를 질 자신이 없다. '제2의 봉준호' '리틀 봉준호'는 너무 크고 벅찬 타이틀이다"고 고백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감독이지 않나? 워낙 대단하고 천재적인 감독이기에 나도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봉준호 감독의 작품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 내 영화 교본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마더'였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으로 필사를 하면서 영화와 시나리오 공부를 했다. 봉준호 감독은 연출자로서도 훌륭하고 완벽하지만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최고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분의 시나리오를 봤을때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쓰지?' 싶을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문을 쓰는 특성, 대사, 단어 등이 모든게 대단했다. 내 몸에 체득하려고 그분의 작품을 꾸준히 필사했다. 지금도 시나리오를 쓸 때도 봉준호 감독의 책을 보면서 공부한다. '어떻게 하면 더 간결하고 비주얼적으로 나은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 연구하며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본다. 그분의 시나리오와 내 시나리오를 비교하면서 한숨을 쉴 때도 많다. 봉준호 감독은 천재다"고 남다른 팬심을 밝혔다.
이어 "이번 로테르담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흑백판이 상영됐는데 그 계기로 봉준호 감독을 로테르담에서 뵐 기회가 생겼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 신인 감독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차원에서 다같이 불러 밥을 사주셨는데 우리 작품이 호평받는 것도 그때 봉준호 감독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이지 않을까?"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범죄극이다.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진경, 신현빈, 정가람, 박지환, 김준한, 허동원, 그리고 윤여정 등이 가세했고 '거룩한 계보' 연출부 출신 김용훈 감독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오는 12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19일로 개봉을 연기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