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태국)=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역대 이런 팀이 또 있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런 팀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용병술의 승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대회였다. 김학범 감독의 모험수가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김 감독이 이끈 한국 U-23 축구 대표팀이 아시아 정상에 섰다. 태국에서 열린 2020 AFC U-23 챔피언십,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무승부도 없이 6전승으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4회째를 맞은 이 대회 첫 우승 감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사실 매우 부담스러운 대회였다. U-23 챔피언십 겸 올림픽 예선으로 열렸다. 상위 세 팀에게만 올림픽 티켓이 주어졌다. 감독 입장에서는 올림픽 진출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대회 우승까지 내다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묘수가 필요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 파격적인 용병술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상 팀을 A팀, B팀으로 나누어 이원화 해 운영했다. 사실상 한 경기씩 번갈아가며 뛰는 구조가 됐다. 멀티골을 넣고도 다음 경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고, 두 경기 연속골을 넣은 선수들은 선발이 아닌 조커로 분류가 됐다. 김 감독은 철저하게 사전 계획에 맞게, 상대팀에 맞춰 선수를 기용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번 대표팀에는 에이스급으로 대우를 받을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다. 전 선수가 주전이라는 마음으로 경쟁 의식을 갖기를 바랐다. 또,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원팀이 되기를 원했다.
여기에 대회가 열리는 태국은 고온다습했다. 일정도 타이트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더운 환경에는 이골이 났던 김 감독은 태국의 더위 역시 쉽게 보지 않았다. 베스트 멤버를 정해 그 선수들이 경기를 다 소화하면, 가장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그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조별리그 때는 경기력이 좋지 않자 비아냥도 나왔다. 일부 선수들도 조직력 유지에는 애를 먹을 수 있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뚝심으로 밀어부쳤다. 그리고 우승까지 이뤄냈다.
김 감독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대회였다. 올림픽, 우승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골고루 주고 싶었다. 그래야 이 선수들이 향후 A대표팀 선수로 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대회 기간 중 자신의 용병술에 한계를 느끼거나, 고비가 찾아온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 "사실 부담이 많이 됐다. 하지만 이런 용병술을 펼친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전만 해도 선수들이 더운 날씨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만약 내가 조별리그부터 베스트 멤버를 고집했었다면, 이런 성적을 내기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 선택이 선수들의 성장에도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본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경쟁 의식 속에 훈련을 성실히 소화해주며 실력도 늘고, 국제대회 실전을 치르며 경험도 쌓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역대 이렇게 많은 선수가 복잡하게 투입된 팀은 없었다. 또, 앞으로의 국제대회에서도 이번 U-23 대표팀과 같은 파격적인 팀 구성은 나오기 힘들다.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태국에서의 여정이었다.
방콕(태국)=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