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류현진을 놓친 LA다저스는 최근 베테랑 우완 지미 넬슨(31)을 영입했다.
계약이 특이하다. 1년간 125만 달러(약 14억7000만원). 하지만 연간 최대 300만 달러 이상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 조항이 삽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옵션을 행사해 1년을 연장하면 200만 달러를 받는다. 2년간 옵션을 풀로 받아낼 경우 최대 1300만 달러 이상 벌 수 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계약은 넬슨의 몸상태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밀워키 브루어스 선발이었던 넬슨은 지난 2년간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지난 거의 뛰지 못했다. 잦은 부상으로 믿음이 떨어지면서 소속팀 밀워키는 넬슨과 계약하지 않았다. 선뜻 큰 돈을 쓰기는 찜찜하지만 넬슨은 '건강할 경우' 썩 괜찮은 선발요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다. 상황에 따라 롱릴리프로도 활용할 수 있어 활용도도 높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시즌 동안 매시즌 175이닝 이상 소화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옵션은 다저스의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안전 장치다.
메이저리그에서 일상화된 조건부 계약. KBO리그도 예외는 아니다. 옵션 전성시대다. FA도, 외인도, 조건부 계약이 줄을 잇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옵션계약도 있다.
안치홍은 전례 없는 파격적인 조건부 계약으로 KIA에서 롯데로 팀을 옮겼다. 계약기간 2년 최대 26억원(바이아웃 1억원), 2022~2023년 2년간 상호 옵션 최대 31억원이다. 올해와 내년을 합쳐 5억원의 인센티브가 설정돼 있다. 2023년까지 4년간 롯데에서 뛸 경우 최대 56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하지만 4년 내내 이 조건이 유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대보다 잘하면 옵트아웃으로 시장의 재평가 받을 것이고, 기대만 못하면 구단은 바이아웃으로 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흔한 바이아웃과 옵트아웃이 KBO에서 공식화 된 첫 FA사례였다.
박석민은 8일 옵션이 보장액보다 큰 FA계약을 통해 소속팀 NC에 잔류했다. 2+1년 최대 34억원의 규모지만, 보장 금액은 절반이 안되는 16억원(계약금 2억원, 연봉 7억원)에 불과하다. 3년차 계약을 실행할 경우의 총 옵션은 18억원에 달한다. 잦은 부상이 만들어낸 불확실성의 결과였다. 계약 후 박석민은 "부상 방지에 많이 신경 쓰고 있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선수들은 없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관리를 못한 것이라 본다. 신경을 더 많이 쓰려고 한다. 계약에 옵션도 있다. 안 아프고 해야 득이 된다.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내가 찬 밥, 더운 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이런 계약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옵션을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받아 들였다. 충분히 이해한다"며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최고 외국인타자로 활약한 호세 페르난데스는 8일 총액 90만달러(약 10억5000만원)에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했다. 90만달러 중 보장 연봉이 45만달러에 불과하다. 옵션이 45만달러로 나머지 절반이다. 페르난데스는 지난해 두산과 계약할 때도 70만달러 중 보장 연봉은 절반인 35만달러였다. 나머지 35만 달러는 옵션이었다.
조건부 계약에 익숙한 외국인 선수는 옵션이 생소하지 않다. 달성하기 어렵지 않으면 흔쾌히 동의한다. 페르난데스 계약도 남들 눈에는 의아했지만 정작 본인은 쿨했다. 페르난데스는 "이 정도 옵션 조건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통상 옵션 등 '조건부 계약'은 불확실성과 최악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단, 구단과 선수 양측 모두의 동의를 요한다. 선수는 당연히 보장 계약을 원한다. 칼자루를 쥔 구단은 덜컥 다 줄 수가 없다. 최근 가성비를 꼼꼼하게 따지는 분위기 확산과 무관치 않다. 선수의 잠재력과 투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은 '조건부 계약'의 가장 큰 매력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 과정에서 선수를 설득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조건부 계약'이다. '총액 개념으로 어느 정도 원하는 만큼 최대한 맞춰 줄테니 열심히 잘 해서 다 가져가라'는 메시지다. 최악의 성적을 예상하며 도장을 찍는 선수는 없다.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분하다.
선수의 아쉬움과 구단의 불안감이란 양립할 수 없는 입장 차이. 민물과 바닷물처럼 다른 두 입장을 만나게 해주는 지점에 바로 조건부 계약이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