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이에게 전화가 바로 왔더라고요"
엇갈린 운명, 이번에도 적으로 만나게 된 '형' 허 웅(27·원주 DB)이 허허 웃었다.
사연은 이렇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9일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올스타전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 올스타전은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허 훈(25·부산 KT)과 2위를 기록한 김시래(창원 LG)가 주장을 맡아 팀을 꾸린다. 이른바 '팀 허 훈'과 '팀 김시래'의 격돌. 팀을 대표하는 두 선수는 드래프트를 통해 팀원을 구성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동생' 허 훈의 선택이었다.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허 훈은 선수 선발 드래프트권을 받아들었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팀을 꾸릴 수 있었다. 팬들의 최대 관심사는 허 훈이 '형' 허 웅을 품에 안을지, 혹은 내칠지 여부. 결론부터 말하면 허 훈은 형을 뽑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뽑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대형 변수, 바로 아버지 허 재 전 대표팀 감독의 선택 때문이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약하고 있는 허 전 감독은 이번 올스타전 드래프트에 특별 멘토로 깜짝 모습을 드러냈다. 허 감독은 이번 올스타 드래프트에서 '팀 김시래'의 특별 멘토로 나섰다. 허 감독은 드래프트 현장에서 '캡틴' 김시래와 함께 선수를 선발했다. 매의 눈으로 선수를 스캔하던 허 감독은 '장남' 허 웅을 품에 안았다. 이렇게 형과 동생은 어긋난 운명으로 격돌하게 됐다.
동생이 아닌 아버지의 선택을 받은 허 웅. 그래서일까. 허 웅은 드래프트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올스타 드래프트가 끝난 뒤 훈이에게 바로 전화가 왔어요. 저를 뽑지 못했다고요. 트레이드도 고민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물론 아버지께는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어요. 워낙 바쁘셔서 연락이 잘 되지 않거든요. 솔직히 누가 저를 뽑든 '뽑힌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라며 웃었다.
형과 달리 동생은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허 훈은 "프로에 온 뒤 형과 계속 다른 팀에서 적으로 뛰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형과 함께 뛰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께서 형의 이름표를 가지고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형과 이번에도 적으로 만나게 됐어요"라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렇다. 두 선수는 용산고-연세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하지만 프로 입단 뒤에는 줄곧 적으로 대결했다. 프로 입문 뒤 두 선수가 함께 뛴 것은 대표팀이 유일하다. 팬들이 '두 선수가 한 팀에서 뛰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아쉬움을 표한 이유다.
허 웅은 "팬들께서 같은 팀을 기대하셨던 것 같은데, 앞으로도 기회는 또 있지 않을까요. 대표팀에서도 함께 뛴 적이 있으니까요. 이제는 팀이 어떻게 나뉘었냐보다는 어떻게 팬들께 추억을 선물할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훈이와 적으로 만난 만큼 이번에도 꼭 재미있는 경기를 해야죠"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허 훈 역시 "생각해보니 형과 다른 팀에서 뛰게 된 것이 오히려 팬들께는 재미를 드릴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형을) 잘 뽑은 것 같아요. 형과의 매치업에서 절대 밀리지 않을 겁니다. 팬들께서 많이 투표해주신 덕분에 1위를 했는데, 좋은 추억 만들어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한편, 이번 올스타전은 19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펼쳐진다. '팀 허 훈' 베스트5에는 이정현 송교창 라건아(이상 전주 KCC) 김종규(DB)가 선정됐다. 이에 맞서는 '팀 김시래'에는 최준용 김선형(이상 서울 SK) 캐디 라렌(LG) 허 웅이 이름을 올렸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