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이는 선수들의 실력 자체 문제이기도 하지만 늘어난 구단수나 경기수 등 제도적인 부분에 기인한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실력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건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몫이다. 의지를 갖고 결심을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지난 10월 23일 잠실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2차전. 2-2 동점 상황에서 5회말 두산의 공격이 끝나고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클리닝 타임'에 들어갔다.
긴장감이 넘칠 수 밖에 없는 시점이지만, 그라운드 한 곳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양팀 선수들이 외야로 몰려 나와 몸을 풀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서로 소속이 다른 일부 선수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양 팀 선수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전날 1차전에서 피 말리는 대결을 했고, 2차전을 앞두고는 야구장 어디서든 얼마든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드러냈을 것이다. 이날 잠실구장은 2만5000명의 만원 관중이 가득 들어찼고, 치열한 응원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경기중 클리닝 타임에 선수들이 외야에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건 좀처럼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클리닝 타임은 일종의 휴식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승을 향해 대결중인 양팀 선수들이 관중이 뻔히 보는 곳에서 친밀한 모습을 노출할 필요는 사실 없다.
경기 중 상대팀 선수와의 접촉은 문제가 될 수 있다. KBO리그 규약 제26조에는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관련 행위 금지'로 경기 시작 후 벤치 및 그라운드에서 전자기기 등 정보기기를 사용한 정보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경기중 양팀 선수가 접촉하는 것은 전자기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키움 내야수 송성문은 1차전서 상대 선수를 향해 '막말'을 했다는 이유로 이날 경기 전 공식 사과를 해야 했다. 그의 행동은 방법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이기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을 표출한 결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오히려 클리닝 타임에 상대 선수와 대화를 하는 게 팬들에게는 더욱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올시즌을 돌아보면 웃지 못할 하나의 사건이 생각난다. 지난 9월 3일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삼성 2루주자 강민호가 롯데 유격수 신본기와와 대화를 나누다 투수의 견제에 아웃되는 어이없는 장면이 있었다. 만일 긴장감을 갖고 있었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 사람으로부터 "한국야구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점수차라도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집중력"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은 플레이를 하게 되면 그런 설명은 무색해 진다.
경기 중 긴장감을 떨어뜨려 팬들을 배반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클리닝 타임에 상대팀 선수와 접촉하는 걸 아예 금지하는 규정을 만드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로이 마사야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