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벤투호는 중국전에서 '척추'를 새로 갈아 낀 효과를 누렸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년 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2차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90분 내내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16개의 슈팅으로 필드 골을 만들지 못한 결정력 부족이 질타를 받긴 했지만, 전반적인 경기력은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었다. 더욱이 1차전 홍콩전을 떠올릴 때 중국전에서 일으킨 변화를 주목할 만했다.
유럽파가 가세한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는 수비수 김민재(베이징 궈안) 김영권(감바 오사카) 김진수(전북 현대)는 중국 공격수들을 상대로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여유가 넘쳤다. 발밑 기술이 뛰어난 김영권은 상대 진영까지 전진하고 내려서길 반복했다. 그 순간 한국은 미드필더 숫자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김민재는 대지를 가르는 공간패스로 중국 수비를 위협했다. 전반 13분 코너킥 상황에선 이마로 이날 유일한 골을 터뜨렸다. 뒤가 든든하니 주세종(FC서울) 황인범(밴쿠버 화이트캡스) 등 미드필더들도 여유롭게 공을 운반했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가 구현됐다. 벤투 감독은 "선수들이 오늘 경기 내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를 지배하면서 공을 컨트롤했다"고 반색했다.
결과를 잡고 내용을 놓쳤던 홍콩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주세종의 말을 빌리자면 경기력 자체가 "삐걱거렸다". 권경원(+김민재)-손준호(+황인범)-김보경-김승대로 이어지는 척추라인이 문제였다. 경기를 풀어가고, 공격을 풀어가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 임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팀에서 손발을 맞춰보지 않은 탓, 몸이 덜 풀린 탓, 홍콩의 밀집수비 탓인 듯했다. 선수단 모두 경기력이 좋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벤투 감독은 중국전을 앞두고 척추라인을 손 봤다. J리그 일정에 따라 홍콩전에서 휴식을 취한 김영권을 김민재의 옆자리에 뒀다. 벤투식 축구를 자주 경험해본 주세종을 '황태자' 황인범의 파트너로 낙점했다. 2선의 가운데, 그러니까 플레이메이킹을 해야 할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이날이 국가대표팀 선발 데뷔전이었던 이영재(강원FC)에게 맡겼다. 부상당해 중도하차한 김승대(전북 현대)를 대신해 이정협(부산 아이파크)이 최전방에 나섰다.
전술은 홍콩전과 같은 4-2-3-1이었지만, 벤투의 축구를 잘 이해하는 선수들과 벤투의 눈도장을 찍고자 의욕 넘치는 선수들의 조합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영재는 몇 차례 번뜩이는 플레이로 코치진의 칭찬을 받았다. 이정협은 포스트 플레이와 전방 압박으로 2선 자원에게 길을 열어줬다. 황인범과 주세종은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와 안정적인 볼 터치로 점유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팀 중 경험이 많은 축에 속하는 한국 선수들은 중국의 거친 플레이에도 노련하게 대처했다. 벤투 감독의 고집도 이날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무리한 전술 실험을 하기보단 가장 잘 하고 꾸준히 해오던 축구로 최우선 목표인 중국전 승리의 결과를 가져왔다. 김민재는 "감독님이 수비수들에게 늘 같은 걸 요구한다. 헷갈리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벤투 감독은 "우리의 플레이 방식과 철학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18일 이번 대회 하이라이트이자 결승전인 한일전을 앞두고 대표팀은 중국전을 통해 분위기를 확 끌어올렸다. 김민재는 "일본엔 지기 싫다"고 말했다.
부산=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