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이고 따뜻하고 독특한 뮤지컬 한 편이 찾아왔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지난 4일 개막한 '빅 피쉬'다.
다니엘 월러스의 소설(1998)을 원작으로 한 '빅 피쉬'는 할리우드의 '괴짜 천재'인 팀 버튼 감독의 영화(2003)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뮤지컬로는 2013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CJ ENM이 글로벌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이번 국내 초연은 우리 정서에 맞춘 버전이다.
'빅 피쉬'는 허풍쟁이 아버지의 기발한 모험담과 그것의 진실성에 대해 점차 의문을 갖게 되는 아들의 이야기를 한 축으로, 아버지가 펼치는 환상적인 모험을 구현하는 무대를 또 한 축으로 전개된다. 뮤지컬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스토리에 역시 흔하게 볼 수 없는 몽환적인 무대 미술이 어우려져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손준호 남경주 박호산)은 아들 윌(이창용, 김성철)에게 자신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겪었던 모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시절 숲속에서 마녀를 만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은 일부터 키가 3m나 되는 거인 친구 칼과 서커스단에서 겪은 고생담, 전쟁터에 나가 암살범 레드팡을 제압한 이야기, 또 고향인 작은 시골 마을 애쉬턴이 수몰의 위기에 처하자 동네 사람들을 이주시킨 미담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아들 윌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평범한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의 삶과 그의 모험담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의심하게 된다. 혹시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 아버지가 허구의 모험담을 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뒷조사까지 한 끝에야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다. 아들에게 모험담의 속의 영웅이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 그리고 아들은 정말로 세상을 헤엄치는 큰 물고기(Big fish)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빅 피쉬'는 어떤 면에서는 미소를 머금게 하고, 또다른 면에서는 묘하게 가슴을 아리게 한다. 특히 아들 키우는 아버지라면 그 감정의 교차점을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팀 버튼의 상상력을 그대로 옮긴 무대 또한 이 뮤지컬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인형극의 테크닉을 활용해 움직이는 거인과 코끼리를 비롯해 화려한 서커스 의상과 분장, 수만송이 수선화가 무대를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1막 엔딩 등은 '오페라의 유령'이나 '라이온킹'과는 다른 무대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준다.
초연 무대라 장면 전환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은 면이 있고, 작품 초반에는 이야기의 컨셉이 멜로 드라마처럼 머리에 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되어 생을 마감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삶에 숨어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끄집어내어 그것을 동화적 판타지로 아름답게 보여준다는 점이 신선하다. 혹시 무언가 놓친 게 있을까,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뮤지컬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