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토트넘 홋스퍼의 간판스타이자 한국 축구의 상징인 손흥민이 패닉에 빠졌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몸도 제대로 못 가눴다. 전후반 90분에 연장까지 뛸 때도 끄떡없던 다리였는데, 정신적 충격으로 그냥 힘이 풀려버렸다. 자책감과 후회가 손흥민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손흥민이 이렇게 된 건 4일 새벽(한국시각) 영국 리버풀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나온 한 장면 때문. 이날 1-0으로 앞선 토트넘은 후반 33분에 에버턴의 역습을 받았다. 전방에 있던 손흥민은 서둘러 후방으로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그리고는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했다. 하필 이때 세르주 오리에가 달려들며 고메스와 2차 충돌하면서 큰 부상이 발생했다. 고메스의 오른 발목은 즉각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손흥민은 현장에서 이런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는 곧바로 패닉 상태가 됐다. 앳킨슨 주심이 옐로에 이어 레드카드를 꺼낸 것 때문이 아니라 적군이지만 '동업자'인 고메스가 크게 다친 것 때문에 손흥민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적어도 손흥민의 눈물과 자책은 진짜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국내 축구팬들의 반응이 다소 이채롭다. 손흥민의 눈물과 충격에 대한 공감과 안타까움, 그리고 앳킨슨 주심의 레드카드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레드카드는 손흥민이 아닌 고메스와 2차 충돌해 부상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오리에가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심지어 다친 고메스에 대한 험담도 엿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손흥민이 한국 축구의 영웅이자 상징이라고 해도 잘못한 걸 아니라고 할 순 없다. 손흥민의 백태클은 축구에서 명백히 금기시 되는 행동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기본 룰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하석주의 멕시코전 백태클을 떠올려보면 간단하다. 상대방의 부상 여부를 떠나 그런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퇴장당했다. 손흥민의 잘못은 팩트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진 뒤에 손흥민의 반응은 그의 평소 성품을 반영한다. 손흥민은 상대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지나친 행동을 주저앉은 채 머리를 감싸쥐며 반성했다. 팀 스태프 뿐만 아니라 상대팀 선수까지 다가와 위로했다는 건 그의 반성이 가식이 아닌 진짜였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도 이미 늦은 후회다. 고메스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안타깝지만, 피해자는 고메스고 가해자는 손흥민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