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0대 보통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 되어버린 '김지영'. 배우 정유미가 용기 있게 김지영의 얼굴을 자처했다.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봄바람 영화사 제작). 극중 타이틀롤 김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가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도가니'(2011), '부산행'(2016)을 비롯해 드라마 '직장의 신'(2013), '연애의 발견'(2014), '라이브'(2018) 등을 통해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연기로 사랑받아온 배우 정유미. 매번 자연스럽고 진솔한 연기로 관객과 시청자를 만족시켜온 그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내는' 평범한 30대 여성 지영 역을 맡아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가 연기한 지영은 결혼과 출산 후 집안일과 육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주 보통의 여성.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이전과 달라진 일상과 현실에 갇힌 기분에 자꾸만 우울해진다. 게다가 열정적으로 회사 생활을 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는 순간과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의 순간이 많아지며 이유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이날 정유미는 '82년생 김지영'을 택하게 된 과정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여러 시나리오와 함께 고민을 했던 것들이 있었다. 사실 제가 여러 배우들이 함께 나오는 일명 '떼주물'을 많이 했었다. 그런 작품이 재미있고 좋았다. 그리고 혼자 단독인 주인공인 영화는 부담스러워서 피했던 면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보자마자 단독 주연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안들고 해야만 하겠다는 마음이 확 들더라. 사실 주인공이면 홍보 활동도 전면으로 나서야 하지 않냐. 사실 제가 그런 걸 잘못한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확 마음이 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내가 이런 작품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라는 배우도 내가 부담스럽지 않고, 관객분들이 '쟤가 왜 주인공을 해?'라는 생각이 이제는 더 이상 들지 않은 때가 이제는 온 것 같다"며 "예전에는 제가 하고 싶어서 했는데 투자가 안되서 무산된 적도 있다. 그런데 또 작은 영화를 하려고 하면 '넌 이 영화를 하기엔 우리가 너무 부담스러워'라며 거절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제작진의 입장과 저의 입장, 그리고 대중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인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원작 소설을 읽어봤냐는 질문에 "시나리오를 읽고 소설을 찾아봤다. 시나리오를 먼저 봤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와 결은 다르지 않은 작품이었다"고 답했다. 원작 소설과 달리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의 결말에 대해 묻자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보다 조금 더 희망적인 결말이 좋았다. 소설의 결말로 어둡게 끝났다면 힘들 것 같다. 힘든 결말 보다는 내 아이, 내 주변의 누군가의 미래가 더 밝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드리면서 끝맺음을 맺고 싶었다"고 말했다.정유미는 페미니즘 열풍에 따라 '82년 김지영'을 바라보는 남성 관객들과 여성 관객들의 엇갈린 반응과 일련의 논란에 대해 "사실 이 정도로 이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어 그는 "어느 정도는 이슈가 있겠다 싶었지만 이정도로 엄청날 줄 몰랐다.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어떤 영화를 결정하면서 제작 소식이 있을 때 이정도의 이슈가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별 걱정은 없었다. 그냥 저희는 평소대로 만나서 리딩을 하고 연기를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정유미는 한 여성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82년생 김지영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솔직히 그런 논란이 생긴다는 게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이해를 해보려 노력하니 하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그냥, 그분들의 생각은 그려나 보다 싶다. 우리의 생각이 모두 다르고 또 같을 때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말로 표현한 사람들의 의견만 듣고 있다. 말로 하는 사람들의 의견만 들리는 상황이 아니가. 말로 표현하지 않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설도 원작도 젠더에 대한 갈등을 이야기 하는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으로 젠더 이슈가 더 가속화되면 너무 서글플 것 같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을 연기하며 주변인들을 돌아보게 됐다는 정유미. "물론 배우인 제 입장과는 조금 다르지만 제 나이 또래의 친구들부터 저의 엄마, 할머니 모두의 이야기라 생각했다"며 "스스로 잘 모르겠는 장면과 감정이 나오면 소설을 찬찬히 읽어봤다. 감정을 표현해야하는 건 제 일이지 않나. 감독님부터 육아가 일을 모두 해내는 워킹맘이었다. 당장 바로 옆에 그런 감독님도 있으니까 참 든든했다"고 말했다.김지영을 연기하며 캐릭터와 장면에 가장 공감했던 것이 있냐는 질문에 "제가 짧은 연기로 감히 김지영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할머니 생각도 많이 났다. 자잘자잘 하게 잊고 지냈던 것들이 느껴졌다. 엄마는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았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친구들도 매일 만나고 싶었을 텐데 그런 희생하셨던 모습이 생각나더라"고 말했다.
보통 엄마와 직장인으로 사는 일반적인 30대 여성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배우 정유미. 그는 "보통의 여성 김지영의 삶을 살아보니 어떠냐"는 질문에는 "제가 잠깐의 연기로 그들의 진짜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위로를 드릴 수 있을까. 하지만 배우로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마음을 전달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가족의 삶, 친구들의 삶을 생각하게 됐다. 그들의 영화 감상평이 참 궁금하다"고 답했다.
30대 보통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 '김지영'이라는 캐릭터. 이런 캐릭터의 얼굴이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묻자 "제가 원래 그런 것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이 작품은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런 작품이 제게 와줘서 고맙다 제가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제게 와준 게 고맙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여성이 느끼는 일상적인 차별에 노출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82년생 김지영'. 그는 여배우로서 느꼈던 일상적 차별은 없었냐는 질문에 "저에게는 정말 다행인 게 지나온 많은 현장들이 늘 지금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이런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어 "물론 저 또한 일상적인 차별은 어느 곳에선가 분명히 느꼈고, 또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저는 그런 것들을 크게 담아놓고 있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 이 영화를 통해 확실히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정유미는 자신을 둘러싼 루머와 악플을 생성한 네티즌을 상대로 진행한 고소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악플과 루머에 대해 "놀랍고 황당하다"고 입을 뗀 그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감수해'라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인 것 같다. 사실이 아닌 말을 만들어 낸다는 게 참 그렇다. 참 웃긴다. 왜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거기 가있어야 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씁쓸해 했다.
한편, '82년생 김지영'은 단편 영화 연출작 '자유연기'로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연기자 출신 연출자 김도영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다. 정유미, 공유가 주연을 맡았다. 오는 23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hcosun.com 사진 제공=매니지먼트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