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다 감사하죠."
'이변의 주인공' 김승희 대전코레일 감독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의외로 덤덤했다. 코레일은 드라마를 썼다. 코레일은 2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19년 KEB하나은행 FA컵 4강 2차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상주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홈에서 열린 1차전을 1대1로 마친 코레일은 2차전에서 연장 전반 선제골을 내줬지만 연장 전반 종료 직전 극적인 2대2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코레일은 승부차기에서 4-2로 웃으며 창단 첫 FA컵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김 감독은 3일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기쁘고 감사하다. 팬들에게 감사하고, 회장님, 임직원 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무엇보다 힘든 상황에서 잘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힘든 승부였다. 코레일은 빡빡한 스케줄 속 힘든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리그에서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고, 4일부터는 전국체전이 이어진다. 이 와중에 FA컵도 소홀할 수 없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국군의 날 지났으니까 이제 철도쪽으로 기운이 오지 않겠냐'고 농담조로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서 상주와 서울의 경기를 봤는데 상주가 분위기가 좋더라. 그래도 우리 멤버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 그냥 열심히 하자고만 했다. 연장에 안가는게 1차 목표였는데 팬들이 즐거웠으면 됐다"고 웃었다.
코레일은 이번 대회에 그야말로 '자이언트 킬러(Giant-killer)'다. 32강에서 당시 무패를 달리던 강력한 우승후보 울산을 2대0으로 완파하며 이변의 서막을 알렸다. 16강과 8강에서는 서울 이랜드와 강원을 모두 2대0으로 꺾었다. 4강에서 상주마저 제압했다. 결과 뿐만이 아니다. 내용까지 K리그팀들을 압도했다. 미드필드 싸움에서 우위를 보인 코레일은 시종 상대를 몰아붙이며 대어를 낚았다. 김 감독은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했다.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감독이 너무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안되는게 많더라. 전술적으로 많이 준비하기 보다는 당일 변수에 맞춰 1~3개 정도 꺼낸게 잘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이번 FA컵에서 유독 이변이 많았던 것은 최근 리그 성향을 보면 오히려 상위 리그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고, 하위 리그에 경험 있는 선수들이 많다. 굳이 잠그지 않아도, 정상적인 경기 운영을 해도 밀리지 않았다. 단판 승부인만큼 경기 외적인 변수를 오히려 하위리그 팀들이 더 잘 통제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코레일이 속한 내셔널리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내셔널리그팀들은 내년부터 대한축구협회가 야심차게 추진한 통합 3부리그에서 뛴다. 실업축구에서만 30년을 넘게 몸을 담은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에게 내셔널리그를 대표해서 올라온거라는 걸 잊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내셔널리그에서 성장한 감독 입장에서 자존심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내셔널리그가 이렇게 문을 닫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김 감독은 "내가 P급 라이선스를 딸때 논문 주제가 내셔널리그였다. 내셔널리그를 디비전 시스템 완성의 걸림돌로 보지 말자는 이야기였는데, 여전히 그 시각이 안타깝다. 디비전 시스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선수들의 일자리 제공, 감독들의 직업 안정성 유지 등 내셔널리그가 보여준 장점이 있다. 수원시청이 1부까지 올라간 수원FC가 된 것처럼 디비전 시스템의 집을 짓는 좋은 재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코레일의 눈은 우승을 향하고 있다. 2005년 지금은 없어진 울산현대미포조선이 결승까지 간 적은 있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다. 내셔널리그가 없어지는 해, 사상 첫 우승의 신화에 도전하려고 한다. 김 감독은 "미디어데이 때 P급 강습회 동기인 이임생 수원 감독과 결승에서 맞붙고 싶다고 했다. 나도 기대가 된다"며 "우리가 FA컵을 우승하는게 이변인지, 수원이 우리를 이기는게 이변인지 한번 지켜보라"고 했다.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코레일은 수원을 만나 한번도 지지 않았다. 김 감독은 "실업 리그에 있을때 수원 2군 다 이겼다. 99년 FA컵 상대가 1.5군으로 나섰을때도 이겼고, 2001년 수원이 데니스, 서정원, 박건하 등 베스트를 냈는데도 우리가 2대0으로 이겼다"고 했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역사는 새로 쓰여지게 돼 있다. 기왕이면 큰 이변이 나오는게 그 역사가 더 오래 기억되지 않겠나"고 웃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