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슈타트(독일)=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차범근 감독이 특별한 스승을 만났다. 독일에서의 차붐 신화를 가능케한 은인이었다. 60대 제자는 80대 스승과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당시를 추억했다. 스승은 전설로 역사에 남은 제자를 보며 흐뭇해하고 또 흐뭇해했다. 제자 역시 정정한 스승을 보며 기뻐했다.
9월 3일 독일 다름슈타트. 차 감독은 팀 차붐과 다름슈타트 유소년팀의 친선 경기가 열린 이 곳을 찾았다.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노신사를 찾아갔다. 둘은 서로 끌어안으며 반가워했다.
노신사는 바로 로타 부흐크만 감독. 차 감독이 처음 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로 진출했던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부흐크만 감독은 한국에서 뛰고 있던 차 감독을 보고 바로 계약을 맺자고 했다. 자신이 찾던 바로 그 선수였다. 그러나 차 감독과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차 감독은 다름슈타트에서 1경기를 뛴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했다. 군대 연장 복무 문제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차 감독은 5개월을 더 복무한 뒤 전역했다. 그 사이 부흐크만 감독은 다름슈타트에서 나왔다. 팀이 강등됐기 때문이었다. 부흐크만 감독은 "당시 차 감독이 계속 있었다면 우리는 1부리그에 잔류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둘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차 감독은 전역 후 프랑크푸르트에 둥지를 틀었다. 1980년 부흐크만 감독이 프랑크푸르트는 맡았다. 1980~1981시즌 DFB포칼 우승을 함께 했다. 부흐크만 감독은 1982년 팀을 떠났다. 차 감독도 1983년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 뒤에도 차 감독과 부흐크만 감독의 인연은 계속 됐다. 독일에서도 틈틈이 만났다. 차 감독 은퇴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며 사제지간의 정을 나눴다.
부흐크만 감독이 기억하는 차 감독의 현역시절은 어땠을까. 부흐크만 감독은 "차 감독이 맥주병처럼 작은 공간을 잘 활용했다. 속도도 좋았고 볼에 대한 감각도 좋았다. 세계적인 선수였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어 "요즘으로 치면 티모 베르너(라이프치히)보다도 빨랐다. 거기에 베르너와는 다르게 피지컬도 좋았다. 요즘에는 차 감독과 같은 선수를 찾기 힘들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