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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현장] "청춘 바쳤다"…'벌새' 전세계 25관왕 大기록이 증명한 문제작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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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누군가 농담처럼 '김보라는 30대를 '벌새'에 다 받쳤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그 정도로 과하게 사랑했던 작품이고 나를 버티게 했던 작품이었어요."

성수대교가 붕괴된 1994년, 거대한 세계 앞에서 방황하는 중학생 은희가 한문 선생님 영지를 만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독립영화 '벌새'(김보라 감독, 에피파니&매스 오너먼트 제작).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벌새'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이날 시사회에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세 소녀 은희 역의 박지후, 세상을 이해한 은희의 한문 선생님 영지 역의 김새벽, 그리고 김보라 감독이 참석했다.

올해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을 예고한 '벌새'는 실제 1994년을 배경으로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별하게 그려 눈길을 끈다. 섬세한 감성과 힘있는 스토리로 136분을 가득 채운 '벌새'는 1994년을 지나온 3040대에게는 공감과 볼거리로 향수를 자극하며 진한 울림을 선사하고, 90년대와 사랑에 빠진 1020대에게는 보편적인 캐릭터와 뉴트로한 무드를 전하며 늦여름 극장가를 달굴 흥행 '비밀병기'로 떠올랐다.

특히 '벌새'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관객상,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집행위원회 특별상을 시작으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네레이션 14Plus 부문 대상, 제18회 트라이베카 영화제 최우수 국제장편영화상·최우수 여우주연상·촬영상, 제45회 시애틀국제영화제 경쟁 대상, 제38회 이스탄불국제영화제 국제 경쟁 대상, 제9회 베이징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 언급상, 제35회 LA아시안퍼시픽영화제 국제 경쟁 심사위원 대상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무려 25관왕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세워 관심을 받은바,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김보라 감독은 "1994년 16살 소녀 은희의 성장 이야기다. '벌새'를 시작하게 됐던 계기는 미국에서 대학원 유학 시절 뿌리가 뽑힌 것처럼 문득 만들게 됐다. 내 기억, 트라우마, 잊을 수 없는 상처 등 기억들의 조각들을 엮어 만든 작품이다. 여기에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1994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데 그 사건을 은희라는 소녀를 통해 그리고 싶었다"며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나오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 선진국이 되기 위한 거대한 열망이 있었다. 성수대교는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열망을 은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그는 "상을 받게돼 감사했다. 그런데 계속 상을 받게돼 얼떨떨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너무 좋은 일이 생겨도 불안하다는 걸 알게 됐다. 상이라는 건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너무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김새벽과 촬영감독, 음악감독도 상을 받았다. 스태프가 받으니 더 기뻤고 감독으로서 보답받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스탄불영화제에서 '케빈에 대하여'(12)의 림 램지 감독이 시상을 했다. 성공한 덕후가 된 기분이었다. 너무 떨렸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최근 '벌새' 서포터즈 관객들과 시사회를 가졌는데 시사회가 끝난 뒤 관객이 손편지를 써줬다. 어떤 수상보다 기쁘고 감동받았다.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쓴 일기를 찾아봤는데 그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라고 바람을 적었다. 이번 시사회가 끝나고 초등학교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아 묘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보라 감독은 '벌새'라는 제목을 정한 것에 대해 "벌새는 희망, 사랑, 생명력 등을 뜻하는 벌이라고 하더라. 어떤 위기에도 살아남는다는 의미였다. 은희의 여정과 벌새의 여정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었다. 주변의 만류로 2시간 16분으로 줄였다. 또 시대극이란 것 때문에 우려도 많았다.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이 이야기를 끌고 갔다. 꽤 오래 준비를 했던 작품인데,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이었던 것 같다. '벌새' 작품을 정말 사랑했다. 누군가 농담처럼 '김보라는 30대를 '벌새'에 다 받쳤다'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과하게 사랑했던 작품이고 나를 버티게 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투자받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다. 여러번 거절 당하고 나온 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곱씹었다.

이어 "2012년 '벌새' 시나리오를 썼다. 이후 세월호 사건을 겪었는데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기시감을 느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 영화가 공감이 기쁘기도 하지만 반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과거의 자전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안타깝다. 나부터라도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됐고 변화를 소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지후는 "설레고 선물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벌새'를 통해 상을 많이 받았는데 아직 실감이 안 나지만 너무 감사하다. 실감은 안 나지만 더 성장해야할 것 같다"고 수줍게 밝혔다.

그는 "내가 겪은 시대는 다르지만 감정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벌새' 장면 중 남자친구를 버린 뒤 거실에서 방방 뛰는 신이 생각난다. 그때 시나리오에는 오징어 춤을 춘다고 써져있었는데 그때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몸부림치듯 내 감정을 드러냈는데 그게 사용됐다. 내 속에 틀을 깬 장면인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답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새벽은 박지후에 대해 "박지후는 첫 만남 때 수줍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안에 담긴 말이 당차게 느껴졌다. 작품에 대해 굉장히 설득력있는 해석을 내놨다. 현장에서도 배우 김새벽이자 영지 선생님으로 대해줘 고마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보라 감독 역시 "지후가 첫 오디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감독님, 저는 볼매(볼수록 매력적이다)다. 다음 오디션도 꼭 불러주세요'라고 말하며 떠났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벌새' 속 은희도 맑고 투명한, 다양한 모습을 가진 캐릭터다. 지후의 투명한 매력과 잘 맞았다. 시나리오의 행간도 정말 잘 읽었다. 특이한 배우라고 여겨졌다"고 애정을 전했다.

김새벽은 "김보라 감독이 가장 아끼는 캐릭터라고 하더라. 그리고 감독의 어렸을 때 기억이 담긴 캐릭터라 더 잘하고 싶었다. 영지 선생님은 삶에 서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관계나 사회 관계에서 좌절도 맛보고 실망도 했지만 그럼에도 믿음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여겨졌다. 나에게 없는 모습이지만 캐릭터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벌새'에서 나는 한문학원에서 한자를 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칠판을 사서 매일 한문을 쓰는 연습을 했다"고 남모를 고충을 토로했다.

김보라 감독은 "정말 매력적인 배우라고 생각했다. 사실 첫 리딩 전 김새벽이 영지 선생님을 하면 너무 정답같을 것 같아 머뭇거렸다. 그런데 리딩을 한 뒤 머뭇거린 마음을 지우게 됐다. 완벽한 영지 선생님이다"고 자신했다.

'벌새'는 박지후, 김새벽, 정인기, 이승연, 박수연 등이 가세했고 단편 '리코더 시험' '귀걸이' '빨간 구두 아가씨' 등을 연출한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독립영화다. 오는 29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