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군복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일본의 거짓말에 속아 중국 관동에 도착했을 때 소녀의 나이 열여섯. 그곳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죽어도 잊을 수 없을 지옥 같은 인권유린을 당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땐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픔을 감추고 살던 소녀는 용기를 내 입을 열었고 한 평생을 진실 규명과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고단한 삶을 마치고 눈을 감았을 때 소녀는 어느덧 94세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27년간의 치열했던 투쟁. 하지만 할머니가 된 그 소녀는, 단 한번의 사과를 듣지 못했다.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92년부터 올해 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송원근 감독, 뉴스타파 제작). 24일 오후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송원근 감독, 정의기억연대 윤미향대표가 참석했다.'김복동'은 '자백'(최승호 감독), '공범자들'(최승호 감독)에 이은 뉴스타파의 3번째 작품으로 송원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한지민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일본의 만행인 위안부를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니 만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인해 일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치솟고 있는 현재의 시국와 맞물려 더욱 관객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복동'은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전 세계를 돌며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을 가지고 싸워온 김복동 할머니의 발자취를 담아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일본군 '위안부'는 역사 날조라고 주장하며 여전히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 그리고 피해자는 배제한 채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선언한 박근혜 정부에 맞선 김복동 할머니의 위대한 행보는 보는 이의 결의마저 다지게 하는 작품. 특히 김복동 할머니를 오로지 '피해자'로서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인권가로서의 꿋꿋한 행보와 목소리에도 주목하면서 관객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이날 송원근 감독은 故김복동 할머니에 대해 "할머니는 피해자를 넘어 인권운동가로 활동을 하셨다. 자기 자신을 버리다시피 하면서 싸우셨다. 할머니가 암 말기였는데도 그렇게 처절하게 싸우셨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그런 할머니는 과연 돌아가시기 전에 무엇을 찾고 싶어 하셨을까. 그걸 알고자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시절을 할머니가 잊고 계셨더라도 돌아가시기 전에는 다시 만나고 싶으셨을 텐데 자신의 활동 속에서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손을 씻는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비추며 시작하는 영화. 이에 대해 송 감독은 "할머니의 씻고 싶었던 과거에 대한 생각들이 행동으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손을 굉장히 오래 씻는 분이다. 제작진의 의아할 정도로 이렇게 손을 오래 씻는 사람이 있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또한 송 감독은 내래이션을 맡은 한지민의 캐스팅에 대해 "한지민씨가 2017년에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기억의 터' 행사에 참석하셨었다. 그걸 저희가 보고 전화를 드려서 기획 의도에 대해 말씀드리고 내레이션을 여쭤봤는데, 한지민가 흔쾌히 참여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할머니가 하고 계신 진주 목걸이가 있는데 끝에 절 표시가 있다.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누군가를 만나서 인터뷰를 할 때는 착용하시는 나비 목걸이가 있다. 해외 긴 여행길에 오르시거나 비행기를 탈 때, 마음이 불안하실 때는 당신의 종교가 불교이기 때문에 절 표시가 있는 목걸이를 하신다. 그걸로 마음에 위안을 받으시는 것 같더라"고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그리고 할머니는 외출을 할 때는 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반지를 끼신다. 늘 자신의 의미와 함께 외출하신다. 행동 하나하나에 무의마한 행동이 없으시다. 매사가 정갈하고 깔끔하고 명쾌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 모습을 영화에서도 보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를 한일간의 정치적인 문제로 몰아가서 이걸 마치 거래로 해결하려는 방식이 있는데 그런 방식은 저희 연대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반대하고 우려한다. 계속 그런 방법으로 몰고 간 것이 일본 정부였다"며 "우리는 처음부터 여성 인권문제로, 일제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는 문제로, 평화의 문제로 생각했다. 김복동 할머니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셨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이 영화를 한국분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우리나라 관객들은 할머니들이 저렇게 해외 각국을 다니면서 저렇게 싸우고 몸부림칠 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나, 또 우리 국민은 무엇을 했나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셨으면 좋겠다"라며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시민들이 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머니들을 공격하고 할머니들의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폄해하는 일본 우익들의 목소리를 다시금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김복동 할머니의 곁에서 영상을 기록으로 담았던 미디어몽구 김정환 PD는 "할머니를 쭉 지켜보면서 할머니가 정말 저를 손주처럼 생각해주셨는데 정말 손주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어딜 가셔도 제 선물을 사다주시고 제가 필요한 것도 어떻게 아셨는지 선물을 해주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병상에서의 할머니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정말 살고 싶어 하셨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정말 죽기 싫다는 말을 하셨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정말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가 더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지금 영화를 보면서도 할머니가 정말 많이 보고 싶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한편, '김복동'은 8월 8일 개봉된다. 상영 수익 전액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쓰일 예정이다. 이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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