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의 돌풍이 매섭다.
강원은 12일 경남을 2대1로 제압하며, 최근 7경기 무패행진(4승3무)을 이어갔다. 특히 최근 5경기에서 무려 15골을 폭발시키며 4승1무의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21라운드만에 10승을 챙긴 강원은 4위(승점 34)에 올랐다. 시즌 개막 전 강등 후보로도 거론됐던 강원은 갈수록 인상적인 축구를 선보이며 후반기 최고의 변수로 떠올랐다.
강원 상승세의 중심에는 단연 '병수볼'이 있다. 김병수 감독은 영남대 시절부터 독특한 콘셉트와 다양한 변화 등 뚜렷한 색채로 주목을 받았다. 프로에 온 뒤 고전하던 김 감독은 강원에 자신의 색깔을 칠하는데 성공했다. 강원은 내용과 결과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K리그에서 가장 주목하는 팀이 됐다. 강원의 상승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병수볼'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병수볼'의 키는 단연 '하프 스페이스'의 활용이다. 축구가 통계화되며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프 스페이스'는 단연 현대축구의 키워드로 꼽히고 있다. '하프 스페이스'는 그라운드를 세로로 5등분 한 뒤, 중앙과 측면 사이에 위치한 공간을 말한다. 갈수록 세부적이고, 조직적으로 변하는 수비전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측면 활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크로스 위주의 천편 일률적인 방법으로는 중앙의 수비조직을 깨기 어려워졌는데, 그래서 강조된 것이 골대에 더 가까운 측면 공간, '하프 스페이스'의 활용이다.
'하프 스페이스'는 정면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데다, 컷백, 커트인 등 다양한 형태의 마무리 방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프 스페이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에당 아자르 등 개인기와 득점력을 겸비한 인사이드 포워드가 등장하며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현대축구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은 이 '하프 스페이스'를 완벽하게 사용하며, 많은 득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 감독 역시 '하프 스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병수볼'에서 기본 대형은 중요치 않다. 경기 중 변화무쌍한 변화로 기본 포메이션은 의미가 없다. 형태 보다는 내용을 볼 필요가 있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경기장 폭을 대단히 넓게 벌린다. 볼 중심으로 숫적 싸움을 강조하는 김 감독은 미드필더 사이에 수비수들을 올려 상대 수비에 비해 2대1, 3대1 등 숫적 우위를 확보한다. 특히 측면쪽 숫적 우위가 중요한데, 윙어가 넓게 벌리며 생긴 안쪽 공간, '하프 스페이스'를 확보한다.
이 과정을 위한 열쇠는 풀백이 쥐고 있다. 풀백은 측면 공격이 강조되며 현대축구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때 가장 볼을 차지 못하는 선수들이 자리했던 자리가 풀백이다. 지금은 스피드와 체력 등 운동능력은 물론 경기를 푸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까지 요구되고 있다. 최근 이적료 기록이 풀백 포지션에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런 것처럼, 김 감독 역시 풀백을 전술의 핵심으로 활용하고 있다. 12일 경남전은 그 백미였다.
김 감독은 무려 4명의 풀백을 동시에 기용했다. 정승용 신광훈이 좌우 풀백으로 나섰고, 윤석영이 센터백, 오범석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진됐다. 전문 센터백은 김오규 하나였다. 풀백들의 위치에 따라 형태가 요동쳤다. 윤석영과 오범석이 동시에 내려서며 스리백 형태로 바뀌는가 하면, 윤석영과 오범석이 전진하며 중앙 쪽 숫자를 늘리기도 했다. 좌우 윙백은 적극적으로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며 찬스를 만들어냈다. '중원의 키' 한국영은 놀라운 기동력으로 다양한 공간을 커버해냈다. 김 감독은 풀백을 윙포워드로 기용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로 재미를 보고 있다.
이같은 변화무쌍한 움직임은 강원이 지난 시즌 득점 2위 제리치를 정리한 이유기도 하다. 측면을 공략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한쪽이 밀집될 수 밖에 없다. 해법은 스위칭을 통한 반대쪽 전환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이 스트라이커의 움직임이다. 내려와서 볼을 받거나, 사이드로 빠져들어가는 움직임을 통해 중앙 수비를 흔들고 공간을 만들어내야 반대쪽에서 움직임이 용이해진다. 아쉽게도 제리치는 득점력이 좋지만 움직임 폭이 넓은 선수는 아니다. 김 감독은 움직임이 좋은 정조국이나 김지현을 중용해, 전술적 효용성을 높였다.
이같은 축구를 위해서는 선수들 스스로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초반까지 강원의 축구는 다소 애매했다. 공간을 찾는 속도가 떨어지다보니 상대가 강력한 압박으로 나서면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세세한 지도로 하나하나 바꿔나갔다. 시간이 지나고, '병수볼'을 이해하기 시작한 지금, 강원의 축구는 대단히 위력적이다. 김 감독 스스로도 "상대의 밀집수비를 강원보다 잘 공략하는 팀이 있을까?"라고 할 정도다.
물론 여전히 약점은 있다. 중앙 수비는 강원의 가장 큰 고민이다. 특히 볼을 뺏기고 난 후 실점률이 높다. 후방 빌드업 과정도 아쉽다. 김 감독은 포지션 파괴로 이같은 약점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아직까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수준급의 센터백이 더해질 경우 강원의 축구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김 감독은 '병수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지도를 받았던 영남대, 포항 유스 출신의 선수들을 원하고 있다. 과연 '완벽주의자' 김 감독이 만들어낼 '병수볼'의 '완성본'은 어떤 모습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병수볼'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