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은 11일 뉴욕 양키스 초청 연수를 밝히는 자리에서, 한국 유소년야구의 현실을 이야기했다.
선 감독은 "우리 때만 해도 학교에 있는 장학금으로 야구부를 운영했다. 지금은 학교에 장학금 자체가 없다 보니 학부모의 돈을 갹출해서 감독에게 월급을 준다고 한다. 결국 학부모가 내는 돈으로 야구부가 운영되어 지도자들은 힘든 훈련을 시킬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든 게 러닝이나 수비 훈련 같은 부분인데, 학부모들의 의견에 좌우되니 아이들에게 힘든 것을 못시키게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런 제도가 하루 아침에 고쳐지기는 어렵지만 고쳐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없다. 지금의 학교 감독들은 진학만 시키기 위해 가르치게 된다. 우리 때는 감독님, 코치님께 배워서 집에서 예습과 복습을 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훈련을 제대로 못하니 사설 아카데미에 가서 배울 수밖에 없다. 그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선진 시스템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선동열 감독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유소년 중에 좋은 선수를 키우고 싶으면 기본기에 충실한 훈련을 가르쳐야 한다. 감독들이 소신있게 가르칠 수 있는 제도가 돼야 한국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선동열 감독이 지적한 부분이 지금 중고교 야구의 가장 정확한 현실이다. 과거에 학원야구는 프로야구의 모태이자 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산실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물론 변화는 많았다. 지도자들의 체벌이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은 이제 찾아볼 수 없고, 투수 혹사를 방지하기 위해 투구수 제한도 생겼다. 예전에는 오로지 운동만 했으나 이제는 주중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주말에 대회를 뛰며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아쉬운 점도 많고 앞으로 더 바뀌어야 할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넘치지만 어쨌든 여러 변화 속에 달라져왔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틀이 흔들리고 있다. 거의 매일 중고야구는 물론이고 대학야구까지 섭렵하고 있는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은 하나같이 "선수들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체력이 부족하거나 힘이 모자란 것이 아니다. 요즘 아마야구 선수들은 신장 1m80은 기본이고 프로 선수 못지 않은 체격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감독의 월급이 학부모들이 내는 회비로 채워지다보니 입김이 셀 수밖에 없고, 선수 출전 기회를 두고도 여러 뒷이야기들이 오간다. 또 프로 지명과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보여지는 성적과 포지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기보다는 타율과 장타를 늘리는데 급급하다. 상대적으로 '수비를 잘해야 맡는 포지션'이라는 인식이 있는 유격수, 중견수 혹은 프로 구단에서 인기가 많은 포수 포지션은 인기가 많지만 나머지 포지션은 서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추세다. 또 최근들어 대학 야구부의 신입생 선발 방식이 바뀌면서 예전처럼 감독이 직접 좋은 선수를 스카웃 해오지 못하고, 고교야구 성적이 좌우한다. 그러다보니 더욱 기본기보다는 타율이나 평균자책점, 인기 포지션에 목맬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부족한 부분은 외부에서 채우려고 한다. 최근 사설 야구 아카데미들이 성행하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프로야구 선수 출신들이 세운 아카데미들이 인기가 좋다. 중학생, 고등학생 야구선수들이 스킬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입단전 몇개월의 공백기동안 마땅히 훈련을 이어갈 곳이 없어서 사비를 들여 아카데미에서 기본기 훈련을 한다. 과거에는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이 운동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으나 요즘은 그마저도 찾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부모들이 얼마나 투자를 하고, 케어를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는 수단일 뿐, 목적 자체가 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 선동열 감독의 이야기대로, 힘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야구계 선배들이 이런 현실을 끊임없이 언급해주고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조금씩이라도 바뀔 수 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