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고종욱(30)에 대한 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의 말이다. 고종욱이란 이름 석자가 나오자 표정이 환해진다. 그만큼 믿고 쓰는 야수다.
염 감독에게 고종욱은 넝쿨째 굴러온 복덩이다. 거포 군단에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로 구색을 맞춰줄 거란 기대 속에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선수.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자 그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은지 오래다. 그야말로 SK 타선의 전천후 카드다. 빠른 발과 상대 투수를 가리지 않는 스프레이 히터. 여러 멀티 상황에서 장점을 두루 갖춘 타자다.
우선 투수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다.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 상대 타율이 4할,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 상대 타율이 3할3푼3리로 특A급에도 강하다.
빠른 발을 감안하면 찬스메이커 역할이 어울린다. 하지만 해결사로서의 쓰임새도 무시할 수 없다. 공격적인데다 찬스에 무척 강하다. 초구, 2구 공략 비율이 전체 타석 중 35%에 달할 만큼 공격적이다. 결과도 좋다. 초구 타율이 4할4리 14타점, 2구 타율이 4할 6타점이다. 총 37타점 중 절반이 넘는 20타점을 초구, 2구 공략을 통해 만들어냈다.
찬스에도 무척 강하다. 득점권 타율이 3할5푼6리에 달한다. 무엇보다 병살 프리는 고종욱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다. 타석에서 1루에 도달하는 속도가 리그 최상급이다. 어지간 하면 병살 처리가 어렵다. 실제 그는 올시즌 312타석에서 병살이 단 2개 뿐이다.
과거 넥센 시절 고종욱과 함께 했던 염경엽 감독은 그의 장점을 꿰고 있다. 염 감독은 "그 당시에도 고종욱이 없으면 타순 짜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현재도 염 감독은 최적의 활용법을 알고 있다. 바로 5번 배치다. 팀 내 무수한 장거리포를 건너뛴 고종욱의 파격적 5번 배치. 이유가 있다. 20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을 다투고 있는 최 정과 제이미 로맥 뒤에 둠으로써 득점력을 극대화 하려는 포석이다. 실제 병살프리에 투수유형을 가리지 않는 고종욱은 찬스에 만나면 무척 곤혹스러운 타자다. 어느 타이밍에 어느 각도로 배트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좀처럼 삼진도 병살 처리도 어렵다. 5번 타순에서 3할5푼8리에 10타점, 6번 타순에서 4할2푼9리에 7타점을 기록 중이다. 염 감독은 "상황에서 이 선수 만큼 좋은 타자도 없다"고 이야기 한다.
공인구 반발력 감소 여파로 장거리포들이 애를 먹고 있는 상황. '홈런군단' SK도 예외는 아니다. 염 감독은 "당초 예상보다 더 줄었다. 우리는 무려 46%나 (홈런이)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홈런 감소로 인해 SK타선은 시즌 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최 정과 로맥의 장타가 살아나면서 고종욱 5번 카드는 최적의 해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고종욱의 단점으로 낮은 출루율을 지적한다. 실제 고종욱은 높은 타율(0.328)과 출루율(0.349) 간 큰 차이가 없다. 볼넷이 10개로 적은 탓이다. 특유의 공격적 성향으로 인한 결과 수치.
하지만 염 감독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롯데 손아섭 같이 공격적인 스타일이라 보면 된다. 그냥 두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타율과 출루율 차이가 점점 벌어질 것"이라며 확고한 믿음을 표했다. 선수의 단점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인재 활용법. 고종욱을 보는 염 감독의 시선은 '렛 잇 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