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조직 생활, 진심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떻게 행동하고, 결국 어떻게 말을 했느냐다.
LG 외국인 투수 타일러 윌슨(30). 그가 외국인투수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 3연전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한 윌슨은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1-1로 팽팽하게 맞선 3회초 유격수 오지환의 송구 실책 2개로 추가 실점을 했다. 1-2로 리드를 빼앗긴 상황. 실망스러울 만 했다.
이날은 특히 스스로 작심하고 마운드에 오른 날이었다. 한화 투수 서폴드와 시즌 세번째 만남. 2경기 모두 잘 던졌지만 승리 없이 1패만 안았다. 특히 직전 맞대결이었던 6월 7일 대전 경기에서 윌슨은 5회까지 1-1로 팽팽히 맞섰지만 6회 선두 타자를 실책으로 출루시킨 뒤 자책 없이 2실점 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윌슨 역시 이 상황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맞대결을 할 때마다 서폴드의 피칭은 너무나도 좋았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수비를 믿고 내 스스로 더 집중하려 노력했다."
잇단 실책으로 리드를 빼앗긴 3회. 실망감이 왜 없었으랴. 하지만 윌슨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결코 티를 내지 않았다. 덕아웃에서 오지환이 다가왔다.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지환이 찾아왔었느냐'고 묻자 윌슨은 웃으며 "음, 맞아요. 오지환이 왔었죠"라고 시인해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철저히 동료에 대한 리스펙트를 잃지 않았다.
"오지환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유격수입니다. KBO 최고 수비력을 갖춘 선수 중 하나죠. 늘 판타스틱한 플레이를 펼칩니다. 내게 와서 미안하다고 하길래 저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했어요. 너는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라고, 항상 저를 든든히 받쳐주며 훌륭한 팀을 만들어주고 있는 선수라고 했죠. 실책이요? 그라운드에서는 정말 말도 안되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요. 바로 그게 야구 아니겠어요?"
외국인 선수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그 선수는 타석과 수비에서 그를 도와주기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 실제 이날 오지환은 실책 2개를 빼고는 최선을 다한 수비를 펼쳤다. 타석에서도 집중력 있게 멀티히트와 사력을 다한 주루플레이로 2득점을 올렸다. 타인을 위한 배려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 외국인 윌슨은 이미 알고 있다.
최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KBO의 외국인 선수들의 천태만상 속에서 윌슨은 독보적인 클래스를 과시하고 있다. 마운드에서 글러브를 발로 차고, 부상 복귀 직후 등판에게 동료에게 짜증을 내고, 마음 먹은대로 안되면 그냥 포기하듯 집중타를 허용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동료들 앞에서 하늘이 꺼질세라 땅만 쳐다보며 의욕을 상실케 하는 부적절한 태도의 용병들과는 극과극으로 대비되는 모습. 외국인 투수에게 중요한 것은 성과 못지 않게 태도라는 점을 윌슨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잘 뽑은 용병은 두고두고 복덩이다. LG 에이스 윌슨이다.
잠실=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