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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동호회·취미 : 티코 오너스 클럽] 사라진 '경차의 조상'…"이젠 '인싸' 아이템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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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냄새만 맡아도 굴러간다."

28년전 대한민국 1호 경차(輕車)인 티코가 처음 출시됐을 때, 탁월한 연비를 가리켜 이같은 말을 하는 운전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티코의 공식 연비는 최고 24㎞/ℓ로 내연기관 차량 가운데 최고이며, 최근 판매중인 하이브리드 차량 보다도 경제적인 차량이다.

하지만 티코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 도로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런 가운데 티코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있다. 바로 '티코 오너스 클럽(T.O.C)' 동호회. 이들로부터 티코의 매력 및 얽힌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사라진 '경차의 조상'…이젠 '인싸' 아이템으로 주목

'경차의 조상'인 티코는 정부의 '에너지 절감 및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에 의해 개발돼 1991년 5월 첫 판매됐다.

당시 대우중공업 계열의 대우국민차는 최저 290만원대의 티코를 출시했다. 41마력의 3기통 796㏄ 엔진을 탑재한 티코는 공차중량이 620㎏에 불과했다. 이에 연비는 수동 기어 기준 최고 24.1㎞/ℓ에 달했다.

전장(길이)은 3340㎜로 요즘 판매되는 국산 대형 승용차의 60% 수준이다. 이같은 '아담한' 크기 때문에 출시 당시 여러 유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껌 밟으면 차가 선다', '회전할 때는 손으로 짚으면 된다', '아우토반(속도무제한 독일 고속도로)에서 포르쉐를 눌렀다', '깍두기(빨간색), 각설탕(흰색)' 등이다.

이같은 '놀림'속에서도 티코는 출시 첫해 3만1000여대, 다음해에는 2배 가량 팔렸으며 2001년 단종되기 전까지 총 1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이후 다양한 경쟁 차종의 등장, 경차 무시 풍조, 안전 우려 등의 이유로 티코는 점차 외면을 받았다. 게다가 남미·동유럽 등 해외로 중고차가 대거 팔리면서 국내에서는 이제 티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2016년 9월 말 기준 80여대의 티코가 국내에 남아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티코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호회 '티코 오너스 클럽', 이들에게 티코는 어떤 존재일까.

추억과 감성, 그리고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 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 아이템 등으로 요약된다. 티코를 소유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티코 오너스 클럽을 이끌고 있는 권영섭 대표(정보보안업)는 "남들이 안타는 차를 운행하면서 주위의 신기해하는 반응과 부품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으며 수리한다는 점에서 희열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13년째 티코를 소유하고 있는 김현복 회원은 "가격 부담 없고 연료비 경제적인 차량으로 티코는 부족함이 없다"고 전했다.

이밖에 '작고 귀여운 디자인', '비교적 쉬운 정비' 등의 티코 구입이유도 있었다.



▶아버지가 타던 차를 아들이 우연히 구입…길가던 시민들 엄지 '척'

티코는 여러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엄지를 치켜세우며 옛 기억을 회상한다는 것.

권 대표는 "차를 주차장에 세워놨는데 연세 지긋한 분이 '어려웠던 시절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던 차를 잘 꾸며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긴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운명처럼 다가온 경우도 있다. 20대 초반의 회원이 구입한 티코를 몰고 집에 도착하자, 그의 부친이 놀라며 옛 사진을 꺼내와 보여주면서 "너 어릴 적 태우고 다녔던 바로 그 차다"라며 "내가 타던 차를 아들이 다시 탈 줄이야"라며 반가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에대해 권 대표는 "부모님 세대들은 모두가 어려웠던 IMF 시절, 함께 했던 티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다"며 "올드카를 유지·관리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사실 티코는 실속을 강조한 차량이다보니 편의성 측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

이에 회원들은 오디오를 교체하거나 일명 '닭다리'라고 불리는 수동 창문손잡이를 자동으로 개조하기도 한다.

부품 조달의 어려움을 겪는 것도 다반사다.

단종된 지 오래된데다 특히 대우차의 주인이 한국지엠으로 바뀌면서 더더욱 부품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권 대표는 "그나마 티코 부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대리점의 사장님과 인연이 되어서 도움을 받고 있다"면서 "회원들이 안심하고 운행할 수 있도록 동호회 운영진들이 최선을 다해 부품을 대신 구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애지중지하고 때에 따라서는 수백 만원의 수리비용이 들어가지만 티코의 시세는 그리 높지 않다. 대략 100만~300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며 최고가는 500만원대 정도다. 희소성이 있긴 하지만 아직 국내 올드카에 대한 인식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회원들은 "얼마나 좋은 차를 싸게 가져와서 돈을 안들이고 타느냐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육원 봉사 등 사회환원 취미…"유라시아 횡단 이루고 싶어"

티코를 운행하다보면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오기도 한다.

'수출되는 차량입니다'라는 스티커를 유리창에 부착해 놓은 중고차 업자가 있는가하면 한 시민은 '500만원에 사겠다'는 쪽지를 남기기도 한다는 것.

아울러 각종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CF 촬영 등에 차량 출연을 해달라는 문의가 쇄도하기도 한다. 권 대표는 "실제 여러 영상에 회원들의 차량이 등장한다"고 전했다.

뿐만아니라 티코의 유라시아 횡단이 재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쉽게 불발된 경우도 있다. 성우 배한성씨가 지난 1992년 티코로 유라시아를 질주했던 길을 20대 회원들이 되짚어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도전은 좌절됐다.

동호회는 올드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희망한다.

외국에선 차량 브랜드들이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올드카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반면 국내에서는 '신기하다'는 시선만 있을 뿐 제조사들의 지원이 사실상 없다는 것.

특히 대우차가 한국지엠에 인수되면서 '찬밥신세'가 됐다는 아쉬움을 동호회는 전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대한민국을 살린 최초 경차인 티코를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동호회의 목표"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동호회는 수시로 정기 모임과 지역 모임을 통해 이를 논의하고 '사회에 환원되는 취미'를 실현하기 위해 소통하고 있다.

권 대표는 "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수 차례 보육원 등 사회보호 시설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면 회원들과 함께 티코를 몰고 북한을 방문, 대한민국 첫 경차를 소개하는 한편 더 나아가 유라시아 횡단을 하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동호회는 올드카를 소유하고 싶은 이들에게 당부도 전했다.

권 대표는 "티코 뿐만 아니라 올드카는 예방 정비만 잘해주면 앞으로 수십 년도 문제없다"면서 "다만 해당 동호회나 기존 소유자들로부터 정비 관련 정보 등을 얻은 뒤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