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26일 부산 사직구장.
아침부터 내린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면서 그라운드는 모두 흠뻑 젖었다. 외야 곳곳엔 깊은 물웅덩이가 생겼고, 일찌감치 내야 전체를 덮는 방수포가 깔렸다. 1, 3루측 양팀 더그아웃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물 웅덩이가 생겼다. 1986년 개장 이래 롯데가 자체 예산을 들여 개보수를 진행해왔지만, 세월의 흔적까지 지울 순 없었다. 2000년대 접어들며 KBO리그에 메이저리그 뺨치는 새 구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며 사직구장은 'KBO리그 최악의 구장'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여름 장맛비 속에 그 민낯은 더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경기장 한켠에선 롯데 시설 관리팀이 비를 흠뻑 맞은 채 불펜 펜스 쪽 철망 보수 작업을 실시했다. 25일 KT 위즈전에서 강백호가 타구 처리 도중 오른손바닥이 5cm 가량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롯데는 경기 직후부터 보수 작업에 들어갔고, 밤샘 작업을 통해 좌-우 불펜 철망 및 1, 3루 내야 철망까지 너트에 인공재를 설치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이리저리 사다리를 옮기며 혹시 모를 틈이 있을까 찾는데 주력했다. 롯데 이윤원 단장은 25일 경기 직후 KT 이숭용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강백호 부상에 유감의 뜻을 전했다.
롯데는 공식 입장을 통해 철망 보수 작업 뿐만 아니라 경기장 전체 안전 점검을 실시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보수-안전 점검이 근본적 대책이 될 지는 미지수다. 이미 수명이 한계에 다한 사직구장의 여건상 어떤 부분에서 다시 사고가 일어날 지 모를 일. 롯데는 부산시에 매년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구장 개보수까지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직구장 노후화 대처 방안으로 롯데에 장기 임대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수 차례 거론돼 왔다. 부산시는 롯데의 사직구장 장기 임대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을 뿐, 그 이상의 관심은 주지 않았다. 집주인인 부산시가 언제든 임대료 상승이라는 '갑질'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롯데는 세들어 사는 집을 제 돈 들여 고치면서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수밖에 없다.
사직구장은 그저 선거철에 이용하기 좋은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다. 현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해 선거 당시 '신구장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 뒤엔 '공론화 등을 거칠 것'이라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되풀이 해왔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