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닷컴 김준석 기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가가 자신의 작품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국내 청년 예술인들을 포함한 일반 관객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CJ문화재단(이사장 이재현)은 지난 5월 24일 오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가의 예술관과 작품 '함녕전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함녕전: 황제의 침실' 특별상영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관련 전공 고등학생과 대학(원)생, 신진 아티스트,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일반 관객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다큐 상영 및 '작가와의 대화'가 120여분간 이루어졌다.
서도호 작가(57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유년시절 부모님과 살았던 한옥, 이에 담긴 추억과 그리움을 미국 유학 시절 머물렀던 집과 연결하고 싶은 마음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설치미술 작품화한 '집' 시리즈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집의 작가'라고도 불린다.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한국적인 것'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대의 보편적 주제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 그는, 뉴욕현대미술관을 포함해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고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2003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 2004년 제19회 선미술상, 2013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올해의 혁신가상, 2017년 호암상 예술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함녕전: 황제의 침실'은 서도호 작가의 2012년작 '함녕전 프로젝트' 제작과정을 기획부터 전시?퍼포먼스까지 종합적으로 담고 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이 공동 주최한 '덕수궁 프로젝트'에 작품 제작 의뢰를 받아 참여하게 된 서도호 작가는 덕수궁의 여러 건물 중 '함녕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하는데…… 프로젝트를 제안 받기 전, 1902년 영국과 일본의 협약을 다룬 책 등 1900년대에 외국인들이 바라본 대한제국 관련 서적들을 읽고 있었다"며 "그러면서 고종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고종 황제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함녕전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덕수궁 함녕전은 고종이 1907년 황제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난 뒤 1919년 승하하기까지 머물던 침전으로 고종의 자취가 깊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서 작가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욕심에 바로 참여하겠다 답했으나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나면 뭔가 떠오르리라 생각했다"고 당시 속마음을 밝혔다. 그는 100여 년간 사람이 살지 않은 빈 공간으로 있어 더 을씨년스러워진 이 곳을 수백 명의 일반 봉사자들과 정성껏 깨끗하게 청소함으로써 온기를 불어넣고 고증을 거쳐 최대한 유사한 환경으로 재현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청소를 모두 마치고도 여전히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때, 명성황후와 엄비를 잃은 고종의 침전에 '늘 보료 3채를 깔았다'는 당시 상궁 삼축당의 증언을 발견하게 됐고 이것이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됐다.
서도호 작가의 함녕전 프로젝트는 '왜 보료 3채인가?'라는 첫 질문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이었고, 청소를 통해 온기를 불어넣은 공간에 고종을 오늘 날로 불러오기 위해 안무가 정영두와 퍼포먼스 협업을 추진하게 됐다.
약 70분간의 다큐멘터리 상영 후 서도호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연구사, 정영두 안무가가 함께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에선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및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서도호 작가의 생각을 더 깊이 들어볼 수 있었다.
우선 고종의 침전 함녕전의 당시 모습 재현에 필수적인 고증 과정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고 서도호 작가는 말했다. 사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 작가는 "처음엔 고종 개인의 비극에 주목했는데, 오래지 않은 근대임에도 자료가 많지 않아서 왕의 침실 하나 재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은 대한제국이라는 한 국가, 그 시대 전체의 비극으로 다가왔다"는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 고비가 올 때마다 각 분야 민간 전문가들과의 협력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
퍼포먼스에서 고종 역을 맡은 정영두 안무가가 고종의 심경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먼저 함녕전에서 하룻밤을 청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지금과 달리 고궁에서 직접 전시나 공연이 진행되는 사례가 드물었던 때 혁신적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이다 보니 문화재청 허가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 서 작가는 문화재청에 직접 장문의 편지를 써가며 그 과정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설치미술, 무용 등 전혀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두 예술가가 서로에게 존경을 느낀 순간이었다는 후문을 전했다.
서도호 작가는 "함녕전 프로젝트나 이 다큐멘터리가 고종을 영웅화하려는 건 아니다. 보료 세 채를 깐 이유는 실제로 고종 밖에 모른다. 역사의 기록은 불완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틈새를 파고 들어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제3의 내러티브가 탄생한다"면서 "우리는 대한제국 시대를 잘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가능한 열심히 공부하면서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중 자신이 발견한 역사의 한 조각을 기점으로 다양한 해석,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상영회에 참석한 젊은 예술인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서 작가에게 이번 상영회의 의미 및 추가 상영 계획을 묻는 관객의 질문에는 "재단법인 아름지기, CJ문화재단 등 이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고 도움 준 분들에게 제작과정과 결과를 보고하는 의미이고 물론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창구 의미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추가로 다큐 상영회를 갖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함녕전 보료를 고증하던 중에 고종 황실이 시카고 박람회에 보낸 보료를 지금 시카고필드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외에도 당시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다는데 2012년에는 결국 가보지 못했다. 향후 이 시카고필드뮤지엄에서 함녕전 프로젝트 퍼포먼스를 재연해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로젝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코멘트로 전체 행사를 마무리했다.
CJ문화재단은 "서도호 작가가 함녕전 프로젝트 진행 시 영감을 얻었던 순간, 끊임없이 공부하고 협업했던 과정들에 대한 스토리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인사이트가 됐을거라 기대한다. 한국 전통의 미와 가치를 가장 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며 세계를 매료시킨 서도호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글로벌 무대로의 도전과 꿈에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특별상영회는 스토리업(STORY UP) 사업을 통해 영화 부문 신인 창작자를 지원하고 있는 CJ문화재단이 사업역량을 활용해 서도호 작가의 작품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 지원한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CJ문화재단과 서도호 작가는 2016년과 2017년에도 다큐 '별똥별: 집을 찾아' 상영회로 젊은 미술학도들을 만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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