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야수 김상수(29)가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올시즌 팀 사정상 2루로 옮기고도 견고한 수비 실력을 뽐내던 그는 11일 대구 롯데전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7회에 이어 8회에도 실책을 범했다. 이전까지 단 1개 뿐이던 실책이 하필 홈 팬이 가득 들어찬 중요한 경기에서 한꺼번에 쏟아졌다.
특히 8회 실책이 뼈아팠다. 3-0으로 앞서던 상황. 1사 1,3루에서 신본기의 타구를 뒤로 흘리며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2루 베이스 옆이라 포구했다면 병살로 이닝 종료가 가능했던 상황. 하지만 투수 장필준의 글러브를 스치며 굴절된 공은 살짝 역스핀을 먹으면서 병살을 위한 토스를 먼저 생각했던 김상수의 글러브를 야속하게 빠져나갔다.
이 실책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허 일의 볼넷이 이어지며 1사 만루. 타석에는 무시무시한 타자 이대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경기까지 최근 5경기 연속 멀티히트 속에 5경기 타율 0.579로 극상승세였던 롯데의 4번타자.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동점을 넘어 자칫 역전까지 걱정해야 할 판. 김상수의 실책 이후 장필준의 제구도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 속에 김상수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우려는 어김 없이 현실이 되는듯 했다. 이대호가 2B1S의 배팅 찬스에서 밀어친 타구는 1,2간을 빠지는 완벽한 우전안타성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김상수가 온 몸을 날렸다. 혼신의 점프 캐치로 글러브에 공을 넣었다. 바로 몸을 일으켜 2루에 토스해 1루주자 포스아웃. 앞서 범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최선을 다한 플레이였다. 그 사이 3루 주자 강로한이 홈을 밟아 3-2 한점 차. 만약 이 타구가 빠져나갔다면 동점을 넘어 역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김상수는 타석에서도 초집중 모드를 이어갔다. 8회말 펜스까지 가는 쐐기 적시타를 날렸다. 공을 잘 골라내 3B1S의 타자 카운트를 만든 뒤 몸쪽으로 붙은 공을 기술적인 타격으로 좌익수 왼쪽에 떨어뜨렸다. 적시타를 치고 출루한 뒤에야 비로소 김상수의 얼굴에는 집 나갔던 예의 환한 표정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마음을 먹으니 현실이 됐다는 점이다.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아쉽고 괴로운 일을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해도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초 집중하면 결과를 바로 낼 수 있는 능력자. 이런 사람들을 흔히 '천재'라 부른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하루. 역설적으로 김상수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경기였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