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의 '핫 가이' 박찬호(24)는 올 시즌 야구인생에서 처음으로 3루 수비를 경험하고 있다. 1일 인터뷰 당시 "(3루 수비는) 어색한 것이 사실"이라며 밝히기도 했다.
박찬호가 3루수를 맡은 건 지난 22일 최원준(22)이 2군행 통보를 받은 뒤부터다. 팀 내 최고참 이범호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한 햄스트링(허벅지 뒷 근육) 부상 이후 수비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2군으로 내려가 있는 상태다.
유격수 출신인 박찬호는 사실 찬밥, 더운 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지난달 5일부터 1군에 콜업된 뒤 어느 포지션이든 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는 "외야수라도 경기에 나가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포수를 하라고 하셔도 감사하다고 하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팀 내에서 유격수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가 있다. 프로 11년차 김선빈(30)이다. 코칭스태프에선 경험 많은 김선빈을 유격수로 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유격수만큼 중요한 곳이 3루수다. 기습타구가 많이 날아든다. 그래서 타구를 잘 잡아내고 막아내야 하기 때문에 3루를 '핫 코너'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박찬호는 지난 11경기 동안 큰 실수 없이 3루를 지켜왔다.
특히 지난달 28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선 박찬호의 '야구센스'가 폭발했다. 일명 '디코이 플레이'로 더블 아웃을 완성시켰다. 3회 말 1사 2루 상황에서 김하성이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2루 주자 이정후는 태그업 플레이를 펼쳤다. 재미있는 상황은 여기서 펼쳐졌다. 우익수 박준태가 공을 잡자마자 3루를 향해 송구했지만 3루수 박찬호는 포구 자세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마치 송구를 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를 펼쳤다. 박찬호의 연기에 속은 이정후는 슬라이딩을 하지 않고 3루에 서서 들어오다 박찬호에게 태그 아웃당했다.
하지만 박찬호는 3루수로 전환된 뒤 첫 실책을 범했다. 7일 두산 베어스전이었다. 패배를 부른 '결정적 실책'이었던 터라 뼈아팠다. 9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경호의 타구를 달려나와 어렵게 포구한 뒤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 1루에 던진 공이 1루수 키를 훌쩍 넘고 말았다. 결국 김경호는 운 좋게 2루까지 내달렸고, 후속 허경민의 끝내기 적시타 때 홈까지 파고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 위에서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던 박찬호를 김세현과 홍세완 코치가 안아주며 격려했다.
박찬호는 이날 실책에 대한 기억을 빨리 털어내야 한다. 자칫 트라우마로 번질 수 있다. 심리적으로 흔들릴 경우 향후 3루 수비 뿐만 아니라 좋은 감을 유지하고 있는 타격에서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스스로 타석에서 느꼈던 것처럼 살아남으려는 수비보다 박찬호표 3루 수비가 필요하다. 잠실=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