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헤보겠습니다."
처음엔 다들 '피식' 웃었다. 주변에서 생각지 못한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뜬금포'를 날린 주인공은 현대모비스의 '둘째 형님' 오용준(39)이었다.
지난 1월 2018∼2019시즌 KBL 올스타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3점슛 콘테스트 출전자를 정해야 하는데 간판 슈터 박경상이 컨디션 저하로 쉬고 싶다며 고사했다.
"그럼 누가 할래?" 유재학 감독의 질문에 대부분 머뭇거리는 사이 오용준이 용기있게 나섰다. 현대모비스에서 마지막 현역 기회를 얻어 베스트5에도 들지 못하는 그가 자원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도현 구단 사무국장도 무모한(?) 도전이지만 용기는 가상하다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오용준이 조심스럽게 건넨 한 마디를 듣고 코 끝이 찡해졌다. "국장님, 올스타전에 제 가족을 데려가도 되나요? 올스타전에 처음 참가하는 것이라…."
2003년 프로 데뷔한 그가 16년째가 돼서야 첫 올스타전이라니, 3점슛 콘테스트에 자원한 속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이 국장은 "아들 앞에서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선수 가족석 얼마든지 구해놓을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랬던 오용준이 올스타전에 비견할 수 없는 '인생 선물'을 얻었다. 생애 첫 우승반지다. 그의 우승반지가 특히 남다른 이유는 현대모비스와의 각별한 인연때문이다. 지난해 KGC에서 2017∼2018시즌을 마친 그는 FA(자유계약선수)로 풀렸지만 갈 곳이 없었다. 나이도 그렇고, 젊은 슈터가 널려있으니 불러주는 팀이 나타나지 않았다. 은퇴를 결심하려고 할 때 유재학 감독이 손을 뻗었다. "39세가 아니라 29세라 생각하고 다시 해볼래?" 문태종(44) 양동근(38) 함지훈(35) 등 노장 선수를 데리고도 '팀'을 만들줄 아는 '만수' 유 감독은 오용준의 '완숙미'를 봤다.
1군 선수로는 최저 수준인 연봉 6000만원에 1년 계약했다. 현대모비스가 오용준을 선택한 데에는 쓰임새 대비 몸값이 저렴해서만은 아니었다. 단점으로 지적됐던 오용준의 성격이 현대모비스에선 제격이었다. 다른 팀에서는 '자기 일에 충실하지만 리더십이 부족하다. 너무 순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하는 선수가 현대모비스는 필요했다. 팀 특성상 양동근이 리더가 돼야 하는데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는 안되는 법, 오용준의 평소 성격은 되레 장점이 됐다.
게다가 오용준은 입단한 뒤 양동근 함지훈이 '독하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보고만 있으면 안되겠네요"라며 후배들을 따라했고, 다시 꽃을 피웠다는 게 이 국장의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용준은 2018∼2019시즌 동안 고비마다 '한방'을 터뜨려주며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다. 3점슛 성공률 정규리그 41.5%, 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 포함) 38.5%의 기록이 말해주듯 팀 내는 물론 리그 전체에서도 호평받아도 될 '알짜 식스맨'이었다.
현대모비스 '막차'를 타기 전까지 지독하게 불운했던 오용준이다. 2003∼2004시즌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에서 데뷔, 2010∼2011시즌까지 뛸 때 오리온스는 쇠퇴기였다. 그가 입단하기 직전인 2001∼2002, 2002∼2003시즌 2년 연속 통합우승을 했던 오리온스다. 이후 LG(2011∼2012), KT(2012∼2015), SK(2015∼2017), KGC(2017∼2018)를 거쳤지만 플레이오프에 몇 번 올라간 게 전부였다.
특히 2016∼2017시즌 하위권이던 SK에서 달랑 1경기 출전했다가 그해 통합챔피언에 오른 KGC로 영입돼 기대에 부풀었지만, 2017∼2018시즌 전 소속팀 SK가 챔피언에 올랐다. 묘하게 우승반지를 피해다닌 프로 인생이었다.
그런 '불운'이 생애 마지막인 현대모비스에서 '행운'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오용준의 유일한 우승반지는 양동근의 '통산 최다 6개'보다 더 값지다.
이 국장은 "오용준이 경기 외적으로도 팀에 공헌한 바가 크다. 연봉 인상-재계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