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화해기류를 등에 업고 대북사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현대그룹의 두 계열사 현대투자파트너스와 현대무벡스가 최근 대북사업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벤처캐피탈 사업을 하던 현대투자파트너스가 지난 2017년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취득한 뒤 사모투자까지 사업을 확장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대북사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현대그룹이 현대투자파트너스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아울러 정보기술(IT) 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무벡스가 최근 IPO(기업공개)를 추진, 이를 통해서도 대북사업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즉, 주력사인 현대아산이 대북사업 전면에 서겠지만, 현대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현대투자파트너스와 현대무벡스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줄 '히든 계열사'라는 것이다.
16일 재계 등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 현대무벡스,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파트너스, 현대글로벌,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현대종합연수원(블룸비스타) 등 인프라·남북경협·투자·에너지·리조트 분야 10여개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중 현대아산을 앞세워 현대그룹은 1998년 11월부터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을 펼치고 있다. 1998년 10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1차 면담 때 금강산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석합의서를 체결했고, 다음달부터 금강산관광이 시작됐다. 이를 위해 현대아산이 설립됐다. 특히 현대아산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북한으로부터 전력, 통신, 철도, 통천비행장, 임진강댐, 금강산수자원, 백두산·묘향산·칠보산 등 명승지 관광사업 등 7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을 얻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사건이 발생한 직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금강산관광사업은 11년째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은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손실과 2200여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이 나면서 그동안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대북사업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해 4월말 판문점 선언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만나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에 합의했다.
이후 현대그룹은 남북경협TFT를 가동해 남북경협사업의 주요전략과 로드맵을 마련했다. 이에 발맞춰 '남북경협재개준비 TFT'를 구성한 현대아산은 지난해 11월 취임한 배국환 사장을 중심으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건설 등 추진해 온 사업 재개를 위해 조직 정비와 함께 세부적인 전략 과제를 수립했다.
또 현대그룹의 자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3월 현대아산의 유상증자에 356억원을 투입하는 등 대북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투자파트너스와 현대무벡스도 대북사업 지원을 위해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현대투자파트너스는 2017년 4월 벤처캐피탈사였던 현대투자네트워크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받은 뒤 2017년 5월 이름을 바꾼 금융회사다.
특히 신기술금융이 정부의 창업·벤처기업 육성책과 맞물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업종으로 벤처투자뿐 아니라 사모투자까지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투자파트너스는 신기술금융사업을 하기 위해 2017년 2월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10억원에서 101억원으로 늘렸다. 새 사업을 위해 든든하게 곳간을 채운 셈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중장기적으로 현대투자파트너스를 벤처투자에 초점을 맞춘 그룹의 종합투자사로 키우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현대증권·현대저축은행·현대자산운용 등 금융계열사를 모두 매각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현대투자파트너스를 통해 투자금융에 재진입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자본금을 확충해 신기술사업 라이선스를 받은 현대투자파트너스가 다양한 투자전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새 수익원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그룹이 현대투자파트너스를 대북사업의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북관계 회복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출범한 직후 현대투자파트너스는 신기술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현대투자파트너스를 통해 자금 조달을 도움 받으려는 것 같다"며 "만약 투자금융사업으로까지 확대하게 되면 대북사업 등에서 자금 확보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북사업의 자금 확보 측면에서 현대투자파트너스가 보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대투자파트너스는 자본금 101억원인 신기술금융사로 벤처캐피탈과 비슷한 사업을 한다"며 "이것으로는 큰 사업을 못하기에 대북사업 사모펀드 조성 등은 너무 나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대북사업에 신기술금융 분야가 있다면 참여하겠지만 아직 대북사업을 시작도 안 한 상태라 예단하기엔 이르다"며 여운을 남겼다.
대북사업과 관련해 재계는 현대무벡스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IPO를 추진하는 것을 놓고 대북사업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는 것. 현대무벡스는 지난해 5월 현대유엔아이가 물류자동화기업인 옛 현대무벡스를 흡수·합병한 뒤 이름을 바꾼 회사다. 현대무벡스는 소프트웨어 개발·공급 등 IT 사업과 물류자동화 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무벡스는 옛 현대유엔아이 시절인 2017년 상장주관사를 선정하며 상장 절차를 밟기도 했으나 옛 현대무벡스와 합병한 뒤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들어 IPO에 대비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신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2014년 3월 이후 사외이사를 둔 적이 없던 현대무벡스는 약 5년 만에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현대무벡스는 상장을 하게 되면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훨씬 수월해진다. 현대아산은 지난 3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500억원을 확보했는데, 현대엘리베이터가 356억원을 참여했다.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을 매각한 뒤 현대그룹의 상장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일하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무벡스가 상장하게 되면 현재보다는 자금조달이 쉬워 현대엘리베이터와 함께 현대아산 자본 확충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정치권에서는 대북사업에서 물류가 필수적이라 물류자동화 사업을 하는 현대무벡스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현대무벡스의 상장은 사업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대북사업 때문이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앞으로 물류·IT 등의 분야 대북사업에 현대무벡스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월말 베트남에서 개최된 북·미 2차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대북사업은 당분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완제 기자 jwj@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