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샤일록은 가라!'
예술사에 길이 남는 명(名) 캐릭터들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도 그 중의 하나다. 햄릿이 '우유부단', 돈키호테가 '좌충우돌'의 상징이라면 샤일록은 '탐욕'의 대변자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오는 5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올리는 창작뮤지컬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 역을 맡은 배우 김수용은 첫 마디에 "샤일록에 덧씌워져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싶다"고 운을 뗐다.
"샤일록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스머프'의 가가멜과 스크루지,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못된 마법사를 합성해 놓은 듯한…. 하지만 이렇게 권선징악의 틀에서만 샤일록을 바라본다면 놓치는 게 많을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 시대, 유럽의 유대인들은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유대인을 개에 비유하는 대사가 튀어나온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리대금업같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샤일록은 나름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선악의 틀을 넘어, 샤일록이 왜 그런 계약을 하게 되고, 왜 복수심에 불타게 됐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그의 악행을 희석시키려는 게 아니라 왜 악행을 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납득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983년 드라마 '세 자매'의 아역으로 데뷔한 김수용은 무려(?) 37년차의 베테랑 배우다. "어릴 땐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연기 흉내를 낸 것"이라고 겸손하게 손사래를 친 그는 "인기에 취해 자칫 어깨에 힘이 들어갈 뻔도 했으나 부모님 덕분에 잘 극복했다"며 싱긋 웃는다.
커리어가 길다보니 웃지 못할 일도 가끔 생긴다. 얼마 전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연습실에 들어갔더니 함께 출연 중인 원로배우 김진태가 나이 많은 배우들한테 "야, 수용이 보면 깍듯이 인사해야지! 니들 보다 훨씬 선배야"라고 해 당황한 적도 있었다.
김수용은 2002년 '풋루즈'로 뮤지컬에 데뷔한 뒤 수많은 작품에서 천변만화의 연기를 보여줬다. 지난해 '나폴레옹'에서 연기한 탈레랑 역은 특히 눈길을 모았다. 나폴레옹의 후견인으로 그를 황제로 만들었다가 파멸시키는 강렬한 캐릭터를 노련하게 소화했다. 그가 샤일록을 맡게 됐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캐스팅 잘 했네"라고 한 근거이기도 하다.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의 세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기 자기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거죠. 그런 점에서 요즘 세상,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김수용은 평소 '사연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어려운 캐릭터를 맡아 밤잠 설치며 고민해 자신의 움직임과 목소리로 구현해내는 과정을 즐긴다. 제대로 '사연 많은 캐릭터'를 만난 그가 보여줄 샤일록이 궁금하다.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