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안타깝게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위로의 한 마디를 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20일 개봉한 스릴러 영화 '우상'(이수진 감독)에어 2주 만에 전혀 다른 작품, 전혀 다른 캐릭터로 돌아온 배우 설경구(51).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뜨겁고 뭉클했던 도전이 4월 극장가를 찾는다.
휴먼 영화 '생일'(이종언 감독, 나우필름·영화사레드피터·파인하우스필름 제작)에서 아들 수호(윤찬영)가 세상을 떠나던 날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못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아빠 정일을 연기한 설경구. 그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생일'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안산 단원고 학생 및 교사 포함 승객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 그리고 남겨진 유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다. 진심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유가족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플롯을 작성하고 트리트먼트를 거듭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한 '생일'은 결코 가볍지 않게, 또 너무 어둡지 않게 담아내 눈길을 끈다.
특히 '생일'의 주인공 설경구는 뜨거운 열연으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파고드는, 강렬한 여운을 안기는 '생일'에 힘을 더한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또 다른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몰입, 일상에 스며드는 담담한 연기로 깊은 공감을 끌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
극 중 자신을 유독 닮았던 아들 수호가 떠난 날, 가족 곁에 있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한 아빠 정일로 변신한 설경구.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공존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을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완벽하게 표현해 관객의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설경구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뜨거운 열연을 선보인 작품으로 떠오른 '생일'. 앞서 '우상'으로 관객을 만난 설경구는 연이어 4월, 다시 한번 스크린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또한 이번 '생일'에서 설경구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00, 박흥식 감독) 이후 18년 만에 전도연과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끈다.
'우상' 이후 2주 만에 다시 신작으로 관객을 찾는 설경구는 "결이 전혀 다른 영화고 캐릭터도 다르다. 개봉이 이렇게 2주 차이로 정해질지 나도 몰랐다. 당황스럽긴 한데 개봉일은 내가 정할 수 없는 부분이라 덤덤하게 받아드리려고 한다. 관객이 또 다른 설경구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생일'은 '우상'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제안받은 작품이다. '우상' 촬영이 예상보다 많이 밀렸고 그때 상황에서는 '생일'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평소 이창동 감독, 그의 동생 이준동 대표와 친분이 많지 않나? '생일'의 제작자인 이준동 대표가 그때 당시 급한 마음에 나한테 준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웃었다.
이어 "그때 '우상' 촬영 분량의 반도 못 찍고 있었는데 '생일' 제작자인 이준동 대표가 내게 일주일간 시간을 줬다. 모든 상황이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편하게 거절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기다리는 동안 '생일' 시나리오 읽었는데 읽고 나니 생각이 전혀 바뀌었다. 어떻게든 조절을 하면서라도 '생일'을 하고 싶었다"며 "'생일'은 '우상' 분량이 끝나고 열흘 안 돼 촬영에 들어갔다. '우상' 당시 노랗게 탈색된 머리를 6~7개월 하다가 '생일'로 검은 머리로 바꾸니까 너무 낯설더라. 검은 머리가 왜 이렇게 낯선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반대로 '생일'에 오히려 낯선 모습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낯선 모습에 낯선 상황에 들어가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세월호를 소재로 한 '생일'에 대해서는 "'생일'이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야기라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이종언 감독이 '여행자'(09, 우니 르콩트 감독) 할 때 연출부였다. 그때 얼굴을 잠깐 본 감독인데 이준동 대표가 이종언 감독에 대해 설명을 잘해줬다. '생일'은 쉽지 않은 책이었다. 신인인데 이준동 감독의 설명을 들은 이종언 감독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이종언 감독도 내게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쉽게 접근하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걸 어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부모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이웃인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큰 참사를 겪고 나서 그들이 변화된 삶을 살고 있고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았다. 자극적이지 않아서 일단 좋았고 주장도 없었다. 일방적인 이야기만 아니었던 것도 좋았다. 툭 뱉은 말인데 칼같이 들어오지 않나? 그런 부분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게 참 와닿았다. 이 책이 단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감상만으로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자신했다.
또한 설경구는 "실제로 촬영할 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각을 닫으려고 했다. 캐릭터도 그랬고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개봉을 앞두고 '생일'에 대한 반대의 소리도 많으니까 그때부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신경이 쓰였다"며 "지난해 11월 때 유가족 시사회를 하고 신경이 쓰이더라. 그분들이 어떻게 봐줄까부터 일반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오해는 없을지, 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게 됐고 지금도 하고 있다. 과연 극장까지 올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여러 고민이 개봉을 앞두고 들더라"고 멋쩍게 웃었다.
그는 "정말이지 유가족들이 '생일'을 보는 게 힘들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영화를 본 다음에 무대인사를 했는데 전도연은 굉장히 힘들어했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유가족들은 영화를 본 뒤 고맙다는 말도 해줬고 나의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공기도 무거웠다. 무대인사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스태프와 커피 타임을 가졌다. 다들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 오히려 나는 고맙다는 말이 오히려 슬프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부담감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부담이 됐다는 설경구. 그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지 않느냐? 생각들이 다 틀리니까 분명 걱정과 우려는 있었다. 다만 이런 내 우려와 걱정이 내가 이 작품을 안 해야 될 이유는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그분들(세월호 참사 유가족)도 가까운 이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연극을 직접 가서 보지 않았는데 유튜브를 통해 접하게 됐다. 그런데 그 연극이 인상적이었던 게 유가족을 가리키면서 '세월호'라고 부르더라. 너무 각인된 게 마음이 아프더라.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설경구는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위로 한 마디를 해줬으면 좋겠다. '생일'을 보면 두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생일'은 마냥 울려고 아프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저 조금 위로를 해주려는 영화다. 두 시간만 관객이 위로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치유는 불가능할 것이다. 작은 위로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당부했다.
한편,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날,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설경구, 전도연, 김보민, 윤찬영, 김수진 등이 가세했고 '시' '여행자' 연출부 출신 이종언 감독의 첫 상업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오는 4월 3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