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전 후반 시작부터는 웜업존에서도 아예 사라졌다.
이강인(발렌시아) 백승호(지로나)는 사실상 파울루 벤투 감독의 게임플랜에 없는 듯 했다. 결국 두 선수는 벤치에서 남은 경기를 지켜봤다. 이강인과 백승호는 모두의 기대와 달리 3월 A매치 2연전 동안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콜롬비아전 후반 마지막 교체카드는 놀랍게도 권경원(톈진 취안젠)이었다.
대표팀은 스리백으로 변신하며, 막판 콜롬비아의 파상공세를 막는데 총력을 다했다. 여전히 경기에 뛰지 못한 선수가 많았지만 벤투 감독은 단 3장의 교체카드를 쓰는데 그쳤다. 실험 보다는 결과를 얻으려 한 벤투호는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벤투 감독은 그런 남자다.
대단히 신중하고, 대단히 보수적이다. 이번 3월 A매치에서 포메이션에 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벤투 감독은 변화 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최대한 지켜본 뒤, 판단이 확신에 섰을때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어떤 외부의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에 와서 달라진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다. 포르투갈 대표팀 시절에도 때로는 뚝심있지만, 때로는 보수적인 용병술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한국축구의 미래'라 불리는 이강인이 뛰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팬들 뿐만 아니라, 기자도, 함께 경기를 준비한 선수들도 아쉬웠다. 이제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이 코 앞인데 맨날 쓰는 선수들만 쓰는 부분도 걱정이 됐다. 벤투호가 3월 A매치에서 치른 것은 월드컵이 아니라 평가전이었다. 조금은 내려놓고, 더 여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무대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그렇지 않았다.
무리하게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았다. 이강인이 뛰는 2선에는 자원이 차고 넘쳤다. 이강인은 아직 이 경쟁을 이겨낼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대표팀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꺼냈다. 기존의 선수들이 이 포메이션을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실제 벤투 감독은 황인범(밴쿠버) 이재성(홀슈타인 킬)을 축으로 2선에서 뛸 수 있는 모든 선수들을 2연전 동안 테스트했다. 이 과정에서 결과도 얻으려 했다. 아시안컵 실패로 입지가 줄어들 수 있는 벤투 감독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자신이 가장 믿는, 혹은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멤버를 교체로 투입했다.
벤투 감독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영건들을) 앞으로도 관찰을 할 예정이다. 이번 소집 훈련을 통해서 능력적인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소속팀에서 어떤 활약을 보이는지 체크할 것이다. 대표팀 소집을 통해 이 선수들을 더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그는 이번 소집을 통해 이강인이 어떤 선수인지 알았다. 이제부터는 이강인의 몫이다. 그가 향후 소속팀에서 어떤 능력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치열한 2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3월 A매치를 통해 한숨을 돌린 벤투호는 이제 6월 A매치까지 여유를 벌게됐다. K리그도 넉넉히 볼 수 있고, 뽑혔지만 쓰지 않았던 선수들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다.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변화 보다는 안정, 급진 보다는 보수를 선호하는, 그런 감독을 뽑았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까지 4년 이라는 시간을 줬다. 좋든 싫든, 지금은 벤투 감독을 믿어야 할때다. 벤투 감독 역시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