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두렵고 무서웠어요."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배우 전도연(46). 그가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어렵고 두려운 이야기를 들고 관객을 찾았다. 휴먼 영화 '생일'(이종언 감독, 나우필름·영화사레드피터·파인하우스필름 제작)은 그의 반성이자 용기였다.
에서 떠나간 아들 수호(윤찬영)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엄마 순남을 연기한 전도연. 그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생일'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안산 단원고 학생 및 교사 포함 승객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 그리고 남겨진 유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다. 진심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유가족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플롯을 작성하고 트리트먼트를 거듭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한 '생일'은 결코 가볍지 않게, 또 너무 어둡지 않게 담아내 눈길을 끈다.
특히 이런 진정성 있는 스토리의 힘을 뒷받침하는 '명품 배우' 전도연의 열연은 남은 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07)을 통해 한국 배우 최초 제60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칸의 여왕'으로 등극한 전도연. '생일'은 매 작품 '인생 캐릭터'를 만드는 그의 용기와 도전이 담뿍 묻어난 또 다른 인생작이다.
극 중 아들을 잃은 상처를 묵묵히 견뎌내며 딸 예솔(김보민)과 살아가는 엄마이자 인생의 큰 비극 속에 가족을 지키지 못한 남편 정일(설경구)에 대한 원망을 가진 여자를 연기한 그는 풍부한 감성과 깊이 있는 연기로 진심을 전해 눈길을 끈다. 앞서 '밀양'을 통해 자식 잃은 여자의 극한 비극을 선보인 그는 '밀양'과 또 다른 감성으로 스크린 가득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이날 전도연은 "영화를 봤는데 시나리오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는 "이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포인트는 이야기 자체가 살아가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 선택했다. 그리고 선택하기 전에 망설였던 지점은 세월호라는 소재가 무서웠다. 다가가기 엄두가 안 났다"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이어 "시나리오 읽기 전에는 어떻게 쓰였을지 걱정했다. 자극적이거나 정치적일 수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이 걱정된 것은 사실이다. 많은 분이 '시기적으로 지금 맞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나 역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지금 맞느냐, 안 맞느냐라는 것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지금 만들게 된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것에 대해 "이창동 감독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작품을 선택한 뒤 이종언 감독이 이창동 감독의 제자였다는 걸 알았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영화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 설명했다.
전도연은 "세월호에 대한 오해도 있고 이견도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없던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이 작품을 보면 세월호라는 소재로 인해 사람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 나면 누군가에겐 응원이 될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했다.
그는 "감정적으로는 다 힘들었다. 모든 신에 진지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종언 감독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오해가 생기면 안 될 것 같아 징검다리 건너듯 하나씩 두들겨 가며 연기한 것 같다"며 "사실 가장 무서웠던 건 유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살고 계시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인데 그분을 직접 본다는 게 조금 무서웠다. 그분들에겐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줄 모르겠더라. 솔직하게 '생일'을 촬영 뒤 안 뵙고 싶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유가족 시사회하고 난 뒤 무대인사를 갔는데, 차마 극장 안에 못 들어가겠더라. 다 울고 계셔서…. 인사를 한 뒤 무대 아래로 내려왔는데 어머니들이 손수 수를 놓아 만든 지갑을 선물해 주시면서 내게 '감사하다'고 하더라. 무섭다고 느끼고 부담스럽다고 느끼기만 했는데 그 순간 죄스럽다고 생각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전도연은 '생일'에 임한 마음가짐에 대해 "거창한 의무감과 책임감은 아니었다. 이 영화에 동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힘들게 선택한 작품이지만 이 선택에 대해 스스로 고맙다고 생각이 든다. 강압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명감, 책임감도 아니다. 그냥 따뜻하게 보여주고 싶었고 나 역시 이웃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감히 이 소재에 다가가거나 무언가를 흉내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녀서 시나리오에 더 집중했다. 오직 시나리오에서 느껴지는 순남의 감정에만 집중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제로 올해 만 10세가 된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전도연은 "나도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를 잃었을 때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알겠더라. 물론 잘 안다고 해서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그게 내가 느끼는 슬픔인지 순남이 느끼는 감정인지 영화 촬영하면서 헷갈렸다. 순남으로서 나올 수 있는 감정인지에 대해 이종언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슬픔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부분을 자기검열을 하면서 임했던 것 같다"며 "아직 내가 좋은 어른인지 어떤 어른인지 모르겠다. 또 좋은 엄마인지 나쁜 엄마인지도 아직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죽을 때까지 좋은 엄마로 완성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을 하려고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생일'을 고민할 때 '밀양'의 신애도 고민됐던 지점이 있었다. '밀양' 이후 자식 잃은 엄마의 역할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이종언 감독에게 그런 고민을 말했을 때 '밀양'과는 다른 감정이라고 하더라. 말로는 설명이 다 안 됐다. '생일'의 순남을 연기할 때 나 역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면 '밀양' 때는 뭘 해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든 파고들려고 했다.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정말 자식을 잃은 엄마 캐릭터는 안 하고 싶다. 왜 그렇게 자식을 잃은 엄마의 역할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를 연기한 '밀양' 당시 감정을 회복하는데 많이 힘들었다는 전도연은 이번 '생일' 역시 트라우마로 심적 고통이 컸다는 후문. 전도연은 "'생일' 촬영이 끝나고 난 뒤 몸이 많이 아팠다. 몸을 쓰는 영화도 아니었는데 감정적인 소모가 심했는지 힘들더라. 잘 때 끙끙 앓으면서 자고 그랬던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감정적인 소모가 커서 육체적으로까지 체력적으로 무리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 촬영이 있어서 추스르고 촬영하기에 바빴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번 '생일'에서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00, 박흥식 감독) 이후 18년 만에 설경구와 전도연의 재회로 화제를 모았다. 이와 관련해 전도연은 "설경구 오빠와는 왜 그렇게 익숙한지 모르겠지만 너무 편했다. 너무 어릴 때 호흡을 맞춰서 그런지 너무 편했다. 작품 속 관계가 원만하지 않는데도 설경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서 편하게 감정을 놓고 연기할 수 있었다"고 웃었다.
그는 "예전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지천명 아이돌'이지 않나? 예전보다 훨씬 더 남자로서 매력이 느껴지더라. 예전에는 그 매력을 잘 몰랐다. 나이 들면서 멋있게 나이 먹는 게 쉽지 않은데 '멋있게 잘 나이 들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어떤 작품이건 캐스팅에 대해 배우와 통화를 하지 않는다. '생일' 또한 캐스팅은 내가 고민했던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생일'은 설경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불편하고 힘든 영화일 텐데 설경구와 서로 의지하면서 촬영하면 되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전도연은 "나 역시 세월호라는 너무 큰 슬픔 때문에 주춤했고 현실을 외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그들에게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가 아니라 촬영할 때부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했으면 굉장히 많이 후회로 남았을 것 같다. 세월호라는 사건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국민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도 그랬다. '구조되겠지' 하면서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후 정말 트라우마로 남았다. 잊지 말자고 기억하자고 했지만 잊고 있었고 잊히기 마련이고 그런 면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무기력해진 것도 있었다. 지금은 '생일'이라는 작품에 참여해서 뭐라도 하나 할 수 있었다는 희망이 생겼다. 물론 이 감정이 '할 만큼 했으니까'라는 멀어지는 느낌이 아니다. 한 발자국 다가간 느낌이 있다. 지금까지 내 작품의 시사회에 친구를 초대해본 적이 없는데 '생일'은 오랜 절친을 시사회에 초대했다. 그 친구가 영화를 보고 난 뒤 '매일 하루하루 너무 힘들다고 투정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곳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감상평을 남겨 주더라. 우리 영화는 정말 딱 이런 영화인 것 같다"고 웃었다.
한편, '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일날,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설경구, 전도연, 김보민, 윤찬영, 김수진 등이 가세했고 '시' '여행자' 연출부 출신 이종언 감독의 첫 상업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오는 4월 3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매니지먼트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