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프로 입문, 어느덧 18번째 시즌을 눈앞에 둔 '베테랑' 김영광(서울 이랜드). 그는 팀의 든든한 수문장이자 정신적 지주다. 그라운드 위에서 뜨거운 열정을 뽐내며 후배들을 이끈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소통왕으로 변신한다.
얼마 전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다. 부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김영광은 후배들과 함께 티타임을 위해 해운대의 한 카페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팬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영광이 형,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라는 요청을 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팬들이 김영광을 알아보고 곧바로 소통을 요청한 것. 김영광은 흔쾌히 응했다.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분만 계신 줄 알았는데, 꽤 많은 분께서 함께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죠."
사실 김영광은 팀 내 소통왕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최근에는 '막내' 후배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올 해 입단한 선수들은 저와 열일곱살 차이가 나요. 돌이켜보니 저도 프로 입문했을 때 강 철 선배와 열다섯살가량 차이가 났거든요. 그때 경험에 제가 먼저 후배들에게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가가는 방법은 바로 '영광타임!'이다. 후배들에게 맛있은 음식을 사주고, 티타임을 하며 고민을 듣는 시간이다. 올 시즌은 유독 '영광타임'이 많다. 이유가 있다.
"새 시즌을 앞두고 팀에 변화가 많았어요. 감독님과 단장님도 바뀌었지만, 선수 구성이 지난 시즌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다행히도 중참급 선수들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어요. 하지만 선수들과 더욱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후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친밀한 시간을 가져야 하죠."
말 그대로다. 지난 시즌 K리그2(2부 리그) 최하위에 머문 이랜드는 새 시즌을 앞두고 확 바뀌었다. '제2의 창단'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다. 김현수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고, 외국인 쿼터도 새 얼굴로 채웠다. 여기에 변준범 허범산 등을 영입하며 도약을 노리고 있다.
변화 폭이 큰 이랜드. 그래서 김영광은 그 어느 때보다 굳은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영광은 2015년부터 함께 한 창단 멤버다.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모였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런 간절한 마음이 중요하거든요. 저도 올 시즌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개막 때 100%를 보일 수 있도록 계획한 대로 운동하고 있어요."
김영광의 몸무게는 18년째 한결같다. "저는 늘 85㎏이에요. 예전에 김병지 선배의 인터뷰를 보고 몸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거든요. 물론 가끔은 야식도 먹고 싶어요. 하지만 축구를 위해서는 몸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아요. '대충대충'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한 적도 없어요. 저 자신을 속이는 것 같거든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철저한 자기관리, 그라운드 위 열정. 김영광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김현수 감독은 "김영광은 정말 열심히 한다. 팀을 위해 굉장히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기 위해 배려 차원에서 주장을 후배에게 넘겨줬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주장이던 김영광은 올 시즌 캡틴완장을 내려놨다. "주장이었으면 막내들에게 다가가기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주장까지 하면 아무래도 더 어렵게 느껴지잖아요. 대신 요즘에는 팀에서 엄마 역할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후배들 밥도 챙기고, 휴식 시간도 책임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온 새 시즌. "지난해 K리그2 골키퍼 상을 받았어요. 감사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이상했어요. 팀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올 시즌에는 정말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산=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