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내 역할은 그림자 보조다."
신해용 원주 DB 단장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DB가 반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고 있다. 개막 전 최하위 후보로 꼽혔으나, 6강 플레이오프(PO) 진출을 향해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다. DB는 지난 시즌에도 우려의 목소리를 깨고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신 단장은 "이상범 감독은 선수를 살릴 수 있는 지도자다. 사실 우리 선수들은 특출나지 않다. 하지만 선수들의 코트 위 움직임을 보면 놀랍다. 이 감독님께서 선수단을 정말 잘 이끈다"고 말했다. 그렇다. DB의 돌풍, 그 중심에는 이상범 감독의 매직이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 감독을 전적으로 믿는 신 단장의 그림자 보조도 있다. 이 감독 역시 "신 단장께서 믿고 맡겨주신다. 팀에 필요한 것을 얘기하면 잘 받아준다. 나도 더욱 책임감을 갖고 팀을 이끈다"고 말했다.
▶숫자에 속지 마라
신 단장은 지난 2016년 4월 DB의 '단장'에 올랐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리빌딩이었다. 김주성 등 그동안 주축으로 뛰던 베테랑 선수들이 하나둘 은퇴를 선언했다.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어린 선수의 성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DB는 첫 걸음으로 이상범 감독을 선임했다.
"리더가 바뀌어야 전체적으로 다 바뀔 수 있다. 이 감독님을 모신 것은 팀 체질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소 2년은 리빌딩 시간으로 생각했다. 감독께서 선수단 틀을 잡은 뒤 '으X으X'해서 성적을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신 단장이 성적 대신 강조한 것은 과정이었다. "당장의 승패보다 지더라도 열심히 하고 지면 그건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벤치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줬다.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 우리 선수들은 '너네가 프로냐'가 아닌 '너희는 프로다'를 보여줬다." DB는 궂은 일은 마다하지 않는 김태홍을 비롯해 알토란 역할을 하는 유성호 등이 중간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여기에 박지훈 허 웅 원종훈 등이 성장하며 팀을 이루고 있다.
승패, 순위 등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 전적으로 감독을 믿고 도왔다. "감독은 경기에 전권을 행사해야 한다. 선수단 운영에서 뜻이 맞지 않더라도 감독 말을 들어야 한다. 단장은 선수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감독은 선수 파악은 물론이고 시즌 계획 등을 총괄한다. 감독의 뜻을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홍보 및 마케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처음으로 '서드유니폼'을 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스포츠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생각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 소비 패턴, 소비자의 생각이 매우 빨리 바뀌고 있다. 스포츠의 경기 규칙은 바뀌지 않지만, 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의 목적은 다 다르다. 채널도 다양해지고 있다.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라고 한다.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 배우면 된다. 시도해야 성공하든, 실패의 교훈을 얻든 한다."
▶아름다운 이별
신 단장의 목표는 명확하다. 아름다운 이별이다. '레전드' 김주성의 은퇴 시기를 두고 이 감독과 수 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이유다. "내몰려서 팀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우 받으며 은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이별은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다. 인사 발령에 따라 언제든 팀을 떠날 수 있다. 내가 언제까지 팀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 팬 모두가 행복한 팀을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잘 해주고 싶다. 물론 현실적 어려움은 있다. 그러나 먹는 것, 운동하는 것만큼은 최대한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육체 트레이닝도 중요하지만 멘탈 코칭도 중요하다. 이 부분 만큼은 꼭 하고 싶다."
신 단장은 DB를 '선수들이 오고 싶어하는 팀'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께서 장기적으로 명문팀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선수단은 감독이 꾸려가지만, 지원은 구단이 도와야 한다. 나중에 다른 누가 오더라도 명문의 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놓고 싶다. 시에서도 도움을 준다. 조금 더 노력하면 모두가 행복한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