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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워진 아시아 무대, '우리'만큼 '남'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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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아랍에미리트(UAE)아시안컵이 낳은 최고 스타는 손흥민(토트넘)도, 자한바크쉬(브라이턴)도, 시바사키(헤타페)도 아니었다. 지난해 말 카타르 뉴스 채널에 나와 아시안컵을 전망했던 '왕년의 스타' 사비 에르난데스(알사드)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 사비의 예상은 말그대로 예언 수준이었다. 8강 진출 팀 중 베트남을 제외한 7개팀을 정확히 맞춘데 이어 결승 대진까지 1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의 승패를 맞췄다. 정점은 우승팀이었다. 사비는 아시안컵에서 단 한번도 8강에 오르지 못한 카타르의 우승을 점찍었다. 함께 알사드에서 뛰는 정우영은 "대본이 아니었을까요"라고 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데로다. 카타르는 한국을 꺾고, UAE에 이어 일본까지 제압하며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비와 달리 우리는 아시아 축구를 너무 몰랐다. 물론 자기가 뛰는 리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정도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아시아축구에 대한 사비의 식견은 놀라울 정도다. 반면 우리는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아시안컵을 준비했다. 상대가 어느 수준인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신경쓰지 않았다. '우리의 축구'만 신경쓰면 되고, '우리의 축구'만 잘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의 8강 탈락이었다.

아시아 축구는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 이제 일본, 호주, 이란, 사우디만 이기면 아시아 정상에 설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다. 베트남은 아시안컵 8강까지 오르며 가능성을 증명했다.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등 변방도 더이상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 대승을 거두지 못했다고 비난받을 상황이 아니다. 중동에서도 중심이 아니었던 카타르는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적극적인 투자로 판을 바꿨다. 오래전부터 공을 들인 유소년 육성이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이미 연령별 대표팀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최근 성인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명장을 데려오며 대표팀의 수준을 높였고, 필요하면 귀화도, 이중국적도 적극 활용했다. 아시아축구는 갈수록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준우승에 머문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은 "우승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전반적으로 아시아축구가 (전력)상승해 (어느 하나)쉬운 경기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제 아시아를 상대로 당연한 승리는 없다.

때문에 이제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제 아시아를 상대로도 준비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깟 중국을 상대로 손흥민 쯤 빼면 어때'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축구가 그토록 원하는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일단 아시아를 넘어야 한다. 시대도 바뀌고 있다. 특히 네이션스리그가 갈수록 확대되며 아시아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시아팀들과 만날 기회가 더 늘어날 것이다. 계속해서 이변의 희생양이 될 경우, 세계에 도전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물론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것을 갈고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힘겨워진 아시아 무대를 넘기 위해서는 이제 '남'들이 어떤지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 축구에 대한 정보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