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벌어진 권 혁의 방출(자유계약) 소동은 한화 이글스 프런트와 선수단에 적잖은 내홍을 남겼다. 여러 이해 당사자가 얽히고 설킨 난제 중 난제였다. 트레이드 요청도 아닌 방출 요청은 드물다. 선수는 구단의 자산이다. 쓸만한 선수의 방출 요청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팀은 없다. 다른 이도 아니고 '불꽃 투혼'의 상징이었던 권 혁이었기에 내부 충격은 두배, 세배였다.
표면적으로 코칭스태프의 2군 캠프행 결정에 반발한 권 혁은 결국 한화를 떠나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한화 구단은 막판까지 권 혁을 붙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권 혁이 원하는 대로 1군 캠프행을 코칭스태프에 조심스럽게 건의해 볼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한용덕 감독에 대한 강한 믿음과 리빌딩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한화의 걱정은 권 혁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례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 만류는 더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향후 코칭스태프의 선수 기용 결정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이 또한 문제다. 반면, 한용덕 노선에 대한 무한신뢰를 재확인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팀 리더십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한화 구단 한 관계자는 "구단이 가장 신뢰하는 이는 한용덕 감독님이다. 감독님의 눈을 믿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1, 2군 캠프 배정의 판단 기준과 평가 잣대에는 문제점이 없었다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권 혁이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한화팬들의 큰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코칭스태프 결정에 대한 반기는 팀 전체를 흔들 수 있다. 하지만 권 혁은 3,4년전 한화의 암흑기 마운드를 박정진-송창식과 함께 떠받쳤던 선수였다. 혹사논란, 부상, 그리고 수술. 한화팬들에게 권 혁은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구단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권 혁은 4년간 32억원의 FA 계약 중 2년간 불꽃을 태우다 사그라들었다. 이후 2년의 부상 부진 원인으로 많은 이닝 후유증이 늘 언급된다.
한화 구단 역시 '빚진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한화가 권 혁 사건을 시종일관 조심스럽게 다룬 이유다. 언론에 먼저 보도되지 않았다면 더 끈질기게 권 혁을 붙들려 했을 것이다. 결론은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조건없는 방출이었다. 트레이드 카드 활용은 한용덕 감독이 원치 않았고, 한화 구단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한용덕 감독과 송진우 투수코치 등 한화 코칭스태프 뿐만 아니라 모든 코칭스태프는 캠프인원 배정에 골머리를 싸맨다. 인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1군 캠프(일본 오키나와)와 2군 캠프(일본 고치) 인원 배분에 있어 몇 가지 기준점이 있다. 확실한 1군 전력인가, 현재 몸상태, 향후 체크 포인트 유무가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체크 포인트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신진급 선수중 몇몇이 이를 토대로 1군 캠프에 합류한다.
권 혁의 2군 캠프행 반발은 단발성 불만은 아니었다. 팀의 급격한 리빌딩으로 인해 베테랑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간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단 관계자와의 몇 차례 면담에서도 이부분을 언급했다. 2군 캠프에서 확실한 몸상태를 보여주면 1군으로 올리겠다는 약속은 어찌보면 2군에 속한 모든 선수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2군 선수들은 늘 1군이라는 꿈을 품고 뛴다. 공개 경쟁은 야구단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중 하나다. 이것 하나만으로 방출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어찌됐든 지난해 한화는 권 혁 없이 리그 불펜 1위를 지킨 팀이다. 코칭스태프가 기존 인원에 대한 우대, 나아가 지난해처럼 새바람을 기대하는 신인들을 먼저보겠다고 판단했다면 이 또한 거부 명분이 없다. 구단이 선수를 방출하는 사례는 꽤 있다. 전력외로 분류되면 조건없이 푼다. 하지만 한화는 타팀이 영입경쟁을 벌일만한 선수를 풀었다.
지난해 심수창은 박종훈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한 뒤 자유의 몸이 됐다. 한화는 올해 LG 트윈스 심수창에게 2억원의 잔여연봉을 지급한다. 상대편 투수에게 연봉을 지급하는 묘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권 혁의 이탈이 남은 베테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현재로선 알수 없다. 올시즌 한화가 예상외로 선전한다면 모든 잡음은 묻힌다. 반대의 경우 '권 혁 유탄'은 언제고 한번은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