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권 혁(36)은 한화 이글스를 떠났다. 한화는 1일 권 혁의 자유계약선수 공시를 KBO(한국야구위원회)에 요청했다. 지난 31일 오전 한용덕 감독, 외국인 선수 셋 등 한화 1군 선수단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로 향했다. 유일한 연봉 미계약자 권 혁은 국내에 남았다. 한화와 권 혁은 31일밤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날밤 무슨 말이 오갔을까.
한화는 마지막까지 조건없는 방출을 요청한 권 혁을 만류했다. 필요 전력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권 혁은 강경했다. 권 혁은 자신이 2군 캠프(일본 고치) 멤버로 분류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올해도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권 혁은 지난해에도 기회가 부족했다는 얘기도 했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연봉협상 보다는 거취문제가 주로 언급됐다. 구단 입장에서는 2군 캠프에서 역량을 보여주면 곧바로 1군 캠프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2군에도 코치들이 구위를 꼼꼼히 체크했다. 구위가 좋으면 무조건 1군이다. 실력으로 입증하면 된다. 지난해 송은범의 경우가 좋은 예다. 권 혁은 부상 여파 등으로 지난해 많이 던지지 못한 상황이다. 1군 캠프에 무한정 선수를 데려갈 수 없으니 코칭스태프가 고심끝에 결정한 명단이다. 이를 존중할 필요도 있었다"고 말했다.
권 혁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권 혁은 지난해 자신이 느꼈던 기회부족과 섭섭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한화 구단은 1일 구단 수뇌부와 코칭스태프가 최종 논의해 방출을 결정했다. 한화로선 뼈아픈 결정이다. 선수는 구단의 자산이고, 최근 2년간 부상과 부진을 경험했던 권 혁이지만 활약 가능성도 여전하다.
1군 캠프와 2군 캠프 참여인원은 한화 코칭스태프가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정한다. 권 혁은 이에 대해 반기를 든 셈이다. 한화가 권 혁을 무리하게 끌어안으려 한다면 코칭스태프에 적잖은 부담을 주게 된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은 아니다. 또 마음이 완전히 떠난 선수를 데리고 있어봐야 최선을 다할 지는 미지수다.
야구 선수는 언제든지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의학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도 통증이 있다고 주장하면 출전을 강요할 수 없다. 이런 경우는 꽤 있다.
한화는 권 혁을 내려놓고 대신 코칭스태프의 결정과 구단의 기준, 향후 리빌딩을 선택한 셈이다. 지난해 심수창 배영수에 이어 권 혁까지 타팀 유니폼을 입고 한화 타자들을 향해 볼을 던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권 혁은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이와 연봉 부담(지난해 FA4년차에 4억5000만원, 올해 한화는 2억원~2억5000만원 제시)이 있다. 하지만 권 혁 본인이 돈 문제가 아닌 기회 문제임을 언급했기에 연봉은 이보다 적은 금액에도 영입이 가능할 수 있다. 왼손이란 이점과 경험. 부상만 없다면 최소 1~2년은 경쟁력 있는 피칭이 가능하다.
한화는 한 명을 손에서 놓는 대신 나머지의 각성을 선택했다. 이번 선택 결과는 긴 시간을 두고 플러스냐, 마이너스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