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아랍에미리트)=박찬준 기자]졌지만 잘싸웠다. 상투적이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듯 하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24일(한국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9년 UAE아시안컵 8강전에서 0대1로 패했다. 지난 요르단과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2007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 이후 두번째로 아시안컵 8강에 오른 베트남은 사상 첫 4강 진출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일본에 무릎을 꿇었다.
역시 전력차가 컸다. 일본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0위, 베트남은 100위였다. 선수단 면면은 상대가 되질 않는다. 박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일본을 분석하기 위해 명단을 봤는데 선수들이 모두 유럽에서 뛰고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일본은 우즈벡과의 조별리그 최종전과 사우디와의 16강전, 선수 명단을 90% 이상 바꿀 정도로 선수층도 두텁다.
하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는 베트남을 주목하는 시선도 많았다. 이유는 역시 '박항서 매직'이었다. 박 감독은 매경기 치밀한 준비와 탁월한 용병술로 깜짝 승리를 거머쥐었다. 여기에 박 감독은 일본을 이긴 경험이 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일본에 1대0으로 이겼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일본을 꺾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박 감독은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로 승리를 자축했다. 당시 일본의 감독은 지금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다.
경기 전 분위기는 뜨거웠다. 이번 대회 유일의 한국인 지도자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 일본을 만나며, 베트남 뿐만 아니라 한국까지 들썩였다. 흡사 한-일전을 방불케하는 분위기였다. 경기 전 기자회견장은 일본, 베트남, 한국기자들로 뒤섞여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박 감독은 너무 뜨거워진 분위기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는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지만 지금은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 있다. 여러가지 한국, 일본의 관심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베트남 감독이라는 것이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의 역할을 착실히 하는게 내 책임과 의무다. 거기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일본전을 앞두고 박 감독은 뜨거워졌다. 환갑이 넘은 박 감독에게 일본은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하는 상대다. 지금도 뜨거운 한-일전이지만, 박 감독의 현역 시절 한-일전은 죽을 각오로 뛰어야 하는, 그런 경기였다. 공교롭게도 박 감독이 국가대표로 출전한 유일한 경기가 1981년 한-일 정기전이었다. 박 감독은 "전문가들이 볼때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낮다. 나와 우리 코칭스태프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 골몰하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내일 일본과의 전쟁에서 두려움 없이 싸울 것이라는 것을 본인들 스스로 분명히 하고 있다. 나와 우리 베트남 선수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전쟁이 시작됐다. 베트남은 박 감독의 말대로 두려움 없이 싸웠다.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일본은 콩푸엉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의 역습에 당황했다. 운도 따랐다. 전반 24분 요시다에게 헤딩 선제골을 내줬지만 VAR(비디오판독) 결과 노골로 인정됐다. 베트남은 이후 여러차례 결정적 기회를 만들었다. 결정력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후반 들어서도 베트남의 선전은 계속됐다. 하지만 VAR로 울었다. VAR 판독 결과 페널티킥을 내줬다. 베트남은 남은 시간 사력을 다했지만 끝내 동점을 만들지 못했다.
박 감독과 베트남의 위대한 도전도 여기서 마무리됐다. 비록 일본에 패했지만, 아무도 박 감독의 여정을 실패라 하지 않는다. 매경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싸운 모습에,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베트남을 이렇게 만든 박 감독이 자랑스러웠다. 박 감독과 베트남에 박수를 보낸다.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