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23·대방건설)은 효녀 골퍼다.
그의 오늘은 가족을 위해 달려온 어제의 결과였다. 네살 때이던 19년 전 아버지 이정호씨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착한 딸은 늘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았다. 아버지 이정호씨는 "정은이는 한번도 어긋난 적 없이 스스로 열심히 했다. 대견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골프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남 순천에서 티칭 프로를 하면 돈을 벌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삶의 물줄기는 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열심히 하면서 포텐이 터졌다. 티칭급이 아니라 선수급이었다.
프로에 입문하면서 가족 전체가 바빠졌다. 딸은 부모 걱정, 부모는 딸 걱정이 시작됐다. 못 말리는 가족 사랑. 결국 몸 불편한 아빠가 딸의 투어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골프장에 도착하면 딸이 엄마와 함께 휠체어를 민다.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부녀는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제가 딸을 위해 할수 있는건 운전밖에 없어요"라며 쑥스럽게 말했다. 늘 아빠가 고맙고 짠했던 딸은 2016년 신인왕에 오른 뒤 전동 휠체어를 선물했다. 데뷔 첫 우승 후 딸은 "아빠 나 우승했어"라며 울먹였다. 쏟아내고 싶었던 많은 말들이 울먹임 속에 잠겨 소리를 잃었다.
찰떡 처럼 붙어다니던 부녀가 떨어져 지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고민 끝에 이정은이 올시즌 LPGA 도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아버지 몸이 불편하시고 어머니도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닌데…. 우선 어머니께서 나를 따라 초반 3개월 정도 미국에서 같이 있는걸로 계획하고 있어요. 아버지 혼자 계시기 어려우니 어머니는 제가 미국 생활 적응 후에 돌아가셔야죠. 저는 전담 매니저와 함께 생활하는 쪽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부모님은 걱정하지 말고 투어를 뛰라고 하시는데 자식 입장에서 그렇게 말씀해하셔도 걱정이 돼요."
부모님 걱정에 자격을 따낸 미국 진출도 망설이고 망설였던 딸. 부모는 오히려 나홀로 외로운 미국 투어 생활을 해야 할 딸 걱정 뿐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한걸음을 내디디려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큰 무대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적 선수로 우뚝 서는 것이 진정한 효도임을 이정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굳세게 다잡고 새 출발선상에 섰다. 낯선 환경에의 빠른 적응을 위해 소속사도 바꿨고, 캐디도 바꿨다. 가장 바꾸기 힘든 것이 가족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다.
이정은은 과거 KLPGA 첫 우승 후 "상상을 많이 하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승을) 현실로 보여드려 뿌듯하다. 가족을 행복하게 해드려야 한다는 목표가 컸다"고 말했다. 이역만리에서 들려오는 LPGA 첫 우승과 신인왕 소식이 딸을 그리워 할 부모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정은은 또 한번 강해져야 한다.
이정은은 오는 15일 태국으로 출국해 3주 간 전지훈련을 가진다. 호주에서 LPGA 시즌 첫 대회를 치를 계획이다. 이정은은 "성적보다 훈련 중에 테스트 삼아 가보기로 했다. 새 캐디(아담)와 호흡도 맞춰보고 싶어 호주를 첫 대회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는 이정은. 그는 과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어떤 선물 꾸러미를 한아름 들고 금의환향할까.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