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유나 기자]"드라마를 모방했다" vs "확대 해석은 금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자 대한의사협회가 공식입장문을 통해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극본 유현미 연출 조현탁) 일부 장면을 지적했고 이는 인터넷 상에서 갑론을박 논란을 낳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사협')는 1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의료기관 내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동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송 행태를 지적했다.
'의사협'은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한 드라마에서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의 뒤를 쫓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방송했다"며 "이번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진료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송 행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8일 방송된 JTBC 'SKY 캐슬'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극중 의사인 정준호를 칼로 위협하며 따라오는 장면이 묘사됐다. 이날 방송에서 의사 강준상(정준호 분)은 자신의 수술을 받고 다리를 절게 된 환자가 칼을 들고 병원을 돌아다니자 그를 피해 도망 다니다 가스총을 쏘며 위기를 탈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방송 내용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 이 장면이 이번 사건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의사와 환자 사이에 갈등과 폭력을 희화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많은 시청자들이 'SKY 캐슬' 게시판에 "드라마가 범죄를 부추겼다"는 비판글을 게재했고, 또 다른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뭔 죄"라고 반박하며 "확대 해석은 금물"이라고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편 지난 2018년 마지막날 12월 31일 임세원 교수는 예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환자에게 가슴 부위를 수차례 찔려 즉각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임 교수는 마지막까지 간호사들을 대피시켜러던 사실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0여년 간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며 우울증, 불안장애 치료에 힘써온 임 교수의 안타까운 사망에 온라인과 SNS에서는 추모와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이에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환경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고인이 몸담았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권준수)는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같은 피해 사례를 막기 위한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하 대한의사협회 공식입장 전문
서울 모 병원 의사 피살사건 관련 대한의사협회 입장
새해를 하루 앞둔 2018년 12월 31일, 서울 모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의료진에 대한 폭력 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지난 한 해, 전 의료계가 한 마음으로 대책을 강구하여 왔으며 그 첫 성과로 국회에서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변이 벌어진 것이다. 새해를 맞이한 의료계는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회원의 명복을 빌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몇 가지 입장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이번 사건은 예고된 비극이라는 점이다. 의료인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폭행은 수시로 이루어져 왔으며 살인사건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진료현장에서 분명한 폭행의 의도를 가진 사람의 접근에 대해서 의료진은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절대 개인의 힘으로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의료계는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을 향하여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의료진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여 왔으나 번번이 좌절되어 왔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응급실 내 폭력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이번 사건은 응급실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내 어디에서든 의료진을 향한 강력범죄가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인식과 대처가 여전히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이 의료진에 대한 폭력사건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둘째,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의료기관 내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동조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송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한 드라마에서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의 뒤를 쫓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방송한바 있다. 이번 사건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진료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송 행태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진료 결과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부추기는 언론의 행태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오해나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공격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신질환자의 의료 이용의 문턱이 더 낮아져야 하며 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를 어렵게 하는 사회적 인식과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이 매우 시급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피의자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직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오히려 섣부른 언론의 추측성 보도나 소셜미디어 상의 잘못된 정보의 무분별한 공유가 대중의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것을 경계한다. 또한 이 때문에 수사당국의 피의자의 범행동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정밀한 정신건강의학적 감정을 함께 요구하는 바이다.
이번 사건은 정신건강의학적 치료의 최전선에 있던 전문가가 환자의 잔혹한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에서 진료현장의 의사들은 물론, 희망찬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우리 사회 전체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철저한 수사를 통하여 사건의 전말과 범행의 계기, 환자의 정신질환과의 연관성 여부 등이 모두 정확하게 밝혀지고 일벌백계로 삼을 수 있는 엄정한 처벌은 물론,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료인 대상 폭력사건에 대한 사회 전체의 문제인식 제고가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예기치 못한 불행으로 유명을 달리 한 회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도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
ly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