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한해. 인생 말년에 접어들수록 의미가 더 각별해진다. 흐르는 세월이 던지는 의미를 깨닫고, 느끼는 탓이다.
야구인생 말년에 접어든 선수들도 마찬가지. 남은 삶이 짧을수록 오늘의 삶이 더욱 소중하듯 새로운 시즌의 시작은 노장 선수에게 남다른 의미를 던진다.
삼성 박한이(39).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타자인 그는 새해면 진짜 마흔이 된다. 희망의 2019년, 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9회말 기준으로 이제 8회말 쯤 된거 같은데요.(웃음)"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린다. '원클럽맨'으로도 불린다. 2001년 1군 데뷔 후 삼성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사이 무려 7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우승반지요? 모두 7개죠. 가끔 한번씩 봐요. 저는 참 행운아죠."
16년동안 세 자릿수 안타 행진을 이어가며 팀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흐르는 강물 같은 세월의 마모를 그 역시 피할 수 없었다. 2017년 31안타에 그치며 17년 연속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다. '박한이 시대가 저무는 것인가' 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올시즌 114경기에서 2할8푼4리의 타율과 10홈런, 43타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팀을 6위로 끌어올리는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는 2018시즌을 아쉬움이 가득한 해로 기억한다.
"개인성적은 생각 안했어요. 오직 5강에 들어 가을잔치에 나가고 싶었을 뿐인데 아쉬워요. 5강에 들었다면 팀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는데…."
자나깨나 팀 생각, 박한이는 '삼성 바보'다. 레전드 활약을 꾸준하게 펼치며 우승도 많이 시켰지만 '대박'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 기회였던 이번 FA신청도 포기했다. '삼성맨'으로 은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저나 아내나 돈을 쫓아다니는 그런 성격이 못돼요. 아쉬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크게 미련을 안 두는거죠. 돈이 아닌 명예를 얻었으니까요."
삼성 라이온즈는 박한이에게 각별함을 넘는 존재다. 그랬기에 그의 마지막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를 있게 해준 팀이죠.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저한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팀이죠. '팀이 곧 나다?' 물론 그렇습니다."
'레전드'의 현재는 과거의 빛이 모아진 총합이다. 한대화 감독이 이끌던 동국대 시절, 박한이는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던 그런 엄청난 선수'였다. 프로 입문 후 무려 16시즌을 그것도 연속으로 안타 100개 이상 때려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위업이다.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 프로야구는 '레전드'에 대한 경의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나이 먹어서 한두해 부진하면 계륵 취급을 받기 일쑤다. 박한이인들 이런 서운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팀에 쓸모 있다고 느끼는 동안 최선을 다해 달리면서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다. 쉴 새 없이 달려온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이 바로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임을 잘 알고 있다.
"삼성을 좋아하는 팬분들로부터 '꾸준함의 대명사'란 말을 들으면서 은퇴하고 싶어요. 평생 한팀에 바쳐온 박한이란 이름 떠올리면 그런 게 먼저 생각나는…."
멋진 마무리를 꿈꾸는 그는 현재를 산다. 화려했던 과거 생각은 없다. 자나깨나 2019년 새 시즌 바보처럼 사랑하는 삼성을 도울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내년에 후배들을 잘 이끌고 팀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구상을 하고 있어요. 주장이 (강)민호로 바뀌었는데 아직 팀 분위기 잘 모르잖아요. 도와주도록 노력해야죠. 그런데 저는 아직 고참같지 않은 생소한 느낌이에요. 후배들은 제가 어려워서 잘 다가오지도 못 하는데…. 아마 내년이면 제 이런 생소한 마음도 바뀌겠죠?(웃음)"
오직 팀 생각 뿐인 그에게도 바람이 있다. 영원한 기억으로 삼성에 남는 것. 삼성의 역대 영구결번은 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이승엽(36번)이다. 영구결번 33번을 꿈꾸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야구선수라면 등번호를 그라운드에 남기고 싶은게 꿈이에요. 이것만은 거짓말을 못하겠네요."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