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시즌이 되면,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사실상 '암표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많은 팬들의 관심이 몰리는 포스트시즌에 입장표를 구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또 암표상의 역사는 오래됐다. 프로야구 원년(1982년)에서도 더 거슬러 올라가 고교야구가 전국구 인기를 끌었던 당시에도 인기 매치업이 열리는 경기장 앞에 암표상들이 어김없이 등장했었다.
문제는 암표상들이 점점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야구장 앞에서 만날 수 있는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암표상은 이제 '구식'이다. 최근 등장한 형태의 암표상은 매크로(여러개의 명령을 하나의 단축키로 간단하게 묶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 프로그램을 사용해, 온라인 예매 시작과 함께 다수의 티켓을 확보한다. 인간의 손보다 기계의 손이 훨씬 빠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일반 팬들은 매크로 암표상들로 인해 정상적인 티켓 구매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매크로 암표상은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인기 아이돌 그룹, 해외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열릴 때는 더욱 심하게 기승을 부린다. 수요가 있는 곳에 매크로 암표상들도 함께 몰리는 것이다.
김석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이사는 29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KBO 윈터미팅에서 "암표 시장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2차 티켓 판매 시장을 법제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김 이사는 'KBO리그 시즌권 판매 확대 및 암표 시장 정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가진 강연에서 이같은 주장을 했다.
김석주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공연과 스포츠를 보기 위해 재판매 티켓을 구매한 소비자 비율이 61%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재판매 티켓 구매를 원한다"면서 "암표 시장은 시장 경제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기 때문에 통제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2차 티켓 판매 시장이 공정한 규제 속에 자리 잡는 게 낫다"며 미국의 '스텁허브', 한국의 '티켓베이' 등의 티켓 재판매 전문 기업들을 예시로 들었다.
또 "한국에서는 아직 티켓 재판매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다. 현재 발의된 관련 법들도 대부분 매크로 암표상 규제에 대한 내용들이다. 건전한 티켓 재판매 시장 형성을 위해서는 관련 법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주, 이스라엘 등 티켓 재판매가 법적으로 원천 금지된 나라들도 있지만, 미국 스웨덴 아일랜드 등 서구권 국가에서는 티켓 재판매 시장을 인정하고, 합의된 규정 하에서 거래가 이뤄지도록 권장하고 있다.
김석주 이사는 "KBO리그 구단들의 평균 시즌권 점유율이 10% 내외다. 시즌권 혜택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지만, 시즌권 재판매가 불가하고, '노쇼'일 경우 리스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합법적인 티켓 재판매 기능을 통해 이 점을 보완하면 1000만 관중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