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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사례를 보니…수원이 염기훈을 놓치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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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염기훈 같은 레전드의 재계약은 구단이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프로축구 재계약의 계절, K리그 구단 한 관계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전북 현대는 26일 레전드 이동국(39)과의 1년 재계약을 발표하면서 "팀 레전드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새 감독 선임에 앞서 재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전북은 현재 중국으로 떠날 최강희 감독의 후임자를 찾고 있다. 으레 새 감독이 오면 그의 구상에 따라 선수단 구성도 바뀌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북은 구단 입장에서 반드시 안고 가야 할 레전드를 먼저 예우했다. 선수 나이로는 은퇴를 바라 볼 때이지만 팀에서의 상징성, 공헌도 등을 특별하게 평가한 것이다.

이동국의 재계약 사례를 보면 문득 눈길이 가는 또 다른 레전드가 있다. 수원 삼성의 '영원한 캡틴' 염기훈(35)이다.

수원이 전북과 다른 점이라면 "재계약하고 싶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을 뿐 염기훈과의 재계약 협상서는 진척이 없다. "신임 감독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라며 곤란해 하는 점도 전북과 다르다.

하지만 수원이 이동국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레전드 염기훈을 잡아야 할 이유가 있다. 지도자 출신의 다른 관계자는 "염기훈은 올시즌에도 수원의 에이스로 뛸 정도로 노쇠하지 않았다. 기량-체력도 그렇거니와 사라져가는 레전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예우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레전드에 대한 배려가 많아지는 만큼 후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리그 전체적인 팬층도 두터워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염기훈은 현재 수원의 현존 레전드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선대 레전드로 평가받아 온 서정원 감독과 이운재 골키퍼 코치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떠날 예정이다. 하필 레전드들이 잇달아 이탈하는 가운데 염기훈 마저 놓친다면 명가 수원의 전통은 반감될 우려가 크다.

염기훈은 기록적인 면에서도 이동국 못지 않은 발자취를 남겨 왔다. 이동국이 통산 215개의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면 염기훈은 K리그 36년 사상 첫 100도움 돌파(통산 103도움)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갖고 있다. 통산 67골로 유일한 '70-70클럽' 가입자인 이동국의 바로 뒤를 잇고 있다.

이 외에도 경찰청 복무기간(2012∼2013년)을 제외한 8시즌째 뛰는 동안 K리그와 구단 역사에 남을 숱한 기록들을 수원에서 만들었다. K리그 최단기간 '50-50클럽' 가입(2015년), 단일팀 내 최다도움(70개) 돌파, K리그 최초 개인통산 5회 한 시즌 두 자릿수 도움, 국내 선수 최단기간 '60-60클럽' 가입(이상 2017년) 등이다. 수원 구단은 의미있는 기록이 나올 때마다 '염기훈 마케팅'으로 그의 기록을 높게 평가했다.

염기훈을 놓치면 안되는 이유는 또 있다. 그의 희생과 리더십은 후배 선수들 모두가 인정한다. 수원 구단 최초로 4시즌 연속 주장을 맡았던 사실만으로도, 평소 수원팬 사이에서 염기훈에 대한 평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다른 팀도 아닌 수원의 주장으로서 너무 무거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서 감독의 배려에 따라 2018년에는 주장 완장을 넘겨줬다. 지난 2015년 재계약 때도 그랬다. 당시 염기훈은 중동 클럽들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의 제안을 받았다. 오퍼 금액이 3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염기훈은 오퍼 금액에 턱없이 낮은 연봉을 감수하면서 수원과의 의리를 선택했다. 당시 '억만금을 줘도 안판다'던 수원 구단은 "염기훈이 영원한 수원맨으로 남는다. 염기훈이 수원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은퇴 후 지도자 연수 등 팀의 진정한 레전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로드맵도 제공하기로 했다"고 공표한 바 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다시 재계약 기로에 섰다. 불의의 갈비뼈 골절상이 아니었다면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 승선했을 염기훈이다. 그 여파로 올시즌 기록은 예년만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레전드는 기록 이상의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다. 전북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다음 차례, 수원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