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른 무대였다. 고심 끝에 투입한 감독은 물론이고, 그라운드 위의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관중들까지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제발 잘 던져줘'라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잘 던지기를 바란건 바로 선수 본인이었을 것이다. 시리즈 내내 컨디션과 구위가 좋지 않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던 두산 베어스 유희관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갖고 마운드에 올랐다. 12일의 깊은 밤 잠실구장,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4-4로 맞선 연장 13회초였다.
이미 두산은 12회까지 총력전을 펼치느라 쓸 수 있는 투수는 거의 다 쓴 상황이었다. 에이스인 조쉬 린드블럼까지 이미 9회에 나왔다. 7번째 투수 이현승이 이미 1⅔이닝을 던진 상황. 8번째 투수가 필요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과 투수코치를 겸임하고 있는 이강철 수석코치는 이미 유희관의 몸을 풀게 한 상태였다. 13회초 SK 선두타자가 9번 우타자 김성현이라 유희관을 내는 타이밍으로 적절한 듯 했다.
실제로 유희관은 김성현을 2루수 뜬공으로 잡은 뒤 김강민도 유격수 땅볼로 처리했다. 아웃카운트 2개를 잡는데 8개의 공만 던졌다. 팀이 가장 힘든 순간에 구위가 예전만큼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사후 한동민에게 던진 초구가 실투였다. 131㎞의 패스트볼이 너무 높게 들어온 바람에 결국 우월 솔로포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게 결국 경기를 끝내고 말았다. SK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긴 홈런이 됐다.
유희관은 고개를 숙이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한국시리즈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내내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시리즈 처음으로 나온 자리에서 치명적 한 방을 허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런 유희관을 감싸줬지만, 선수 본인이 느끼는 좌절감과 상처까지 다 어루만질 순 없었을 것이다.
비록 뼈아픈 결승 홈런을 허용했지만, 유희관은 그간 팀을 위해 뛰어난 활약을 해온 선수다. 특히 2015, 2016시즌에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거둘 때 마지막 순간 마운드에서 두 팔을 올리고 환호했던 이가 바로 유희관이다. 12일 밤의 결승포 헌납보다 그가 지금까지 팀에 안긴 영광의 순간이 훨씬 많다. 올해 정규시즌에도 10승(10패)을 거둬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기도 했다.
분명 유희관은 3~4년 전의 전성기 때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 건 맞다. 이번 한국시리즈 때도 준비과정 때부터 다른 투수들에 비해 구위가 좋지 못해 등판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유희관에 대해 김태형 감독 역시 아쉬우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숙소 사우나에서 마주쳤을 때 말 없이 등을 두드려주던 김 감독이다. 그런 유희관이 모처럼 나선 경기에서 뼈아픈 결승타를 맞았으니 김 감독의 마음은 더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국시리즈는 12일 밤으로 끝났어도 야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유희관은 내년에 33세가 된다. 여전히 30대 초반이다. 한국시리즈에서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 겨울을 뜨거운 단련의 시기로 보낸다면 다시금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회복할 수도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과연 유희관이 뼈아픈 상처를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