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의 가을 축제무대, 포스트시즌을 지배하는 '가을 DNA'는 정말 실체하는 것일까.
매년 가을, 정규시즌의 열전을 마친 KBO리그는 포스트시즌에 돌입한다. 페넌트레이스 상위 5개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고 벌이는 한 달 남짓의 '왕좌의 게임'이다. 올해도 정규리그 1위 두산 베어스를 필두로 SK 와이번스와 한화 이글스, 넥센 히어로즈 그리고 KIA 타이거즈가 지난 10월 16일부터 열전을 펼치고 있다.
이제는 최종 스테이지만 남았다. 정규리그 4위 넥센이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에서 각각 KIA와 한화를 연파하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대접전 끝에 SK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에서 이미 수 많은 명승부와 명장면이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포스트시즌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른 바 '가을 DNA'를 지닌 선수들이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SK 박정권이다. 여기에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한 김강민에 포스트시즌 연속 경기 득점 신기록(9경기)을 달성 중인 두산 정수빈도 포함될 수 있다. 포스트시즌에 유난히 두드러지는 이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면 은유적 표현처럼 여겨지는 '가을 DNA'라는 상수가 이들 내부에 실제로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박정권은 정말 극단적인 케이스다. 그는 올해 트레이 힐만 감독이 주도한 세대교체의 기류에 완전히 휩쓸려 팀내 존재감이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특별한 부상이 없었음에도 박정권의 올해 1군 출전경기는 겨우 14경기였다. 여기서 소화한 타수가 29번에 그쳤다는 건 그 경기에서도 대부분 교체선수로 짧게 나왔다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적은 기회 속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건 극도로 어렵다. 실제로 박정권은 정규리그 1군 타율이 1할7푼2리(29타수 5안타)에 그쳤다.
김강민은 그나마 박정권에 비하면 조금 나은 편이다. 80경기에 나와 235타수 70안타로 타율 2할9푼8리에 14홈런 4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경기수나 타석수를 보면 역할이 외야 백업에 한정돼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두 선수 모두 포스트시즌 엔트리 합류 여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힐만 감독은 이들 '가을 남자'들을 전격적으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합류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박정권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9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 때도 경기 중반 역전 2점 홈런을 날려 결승타를 기록하며 다시 연이어 '1차전 데일리 MVP'를 수상했다.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 4할2푼9리(21타수 9안타)에 3홈런으로 시리즈 MVP의 영예를 안았다.
정규시즌의 기록으로는 도저히 예상치 못한 이런 맹활약의 원동력은 결국 '가을 DNA가 존재한다'는 명제에 설득력을 심어준다. 박정권은 올해 뿐만이 아니라 커리어 내내 포스트시즌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자주 펼쳤다.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에 총 49경기나 나와 타율 3할1푼9리에 9홈런 34타점을 쓸어담았기 때문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이런 활약상에 대해 "타고날 때부터 큰 경기에 임할수록 더욱 강한 집중력과 여유를 갖는 선수들이 있다. 압박이 심한 포스트시즌의 환경에서 다른 간판 선수들이 긴장감에 흔들릴 때 이들은 게임 자체를 즐긴다"고 평가한다.
결국 이런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팀일수록 큰 경기의 승부처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쉽다.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컵의 주인도 이러한 '가을 DNA'를 어느 쪽이 더 많이 지녔는가에 의해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