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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2011, 2014 그리고 2018. 씁쓸한 가을 데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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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2011, 2014 그리고 2018. 씁쓸한 가을의 데자부

"우리 감독 바꿔줘요!. XXX 감독 사퇴하시오!"

불만의 소리는 이내 분노의 함성으로 돌변했다. 전에는 기쁨을 주던 야구가 지금은 짜증을 주고 있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온라인 상에서 토론을 벌였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랑하는 우리의 팀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토론이 계속되니 아예 카페도 만들었다.

'우리의 팀'을 이 지경으로 몰고 온 보기 싫은 감독을 바꾸는 것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 맞아. 저 무능력한 감독만 아니었다면 우리 팀이 이 지경까지는 안됐을거야.' 누군가는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는 의견을 냈다. '맞아! 맞아! 팀을 진짜 사랑 하는 팬이라면 가만히 있으면 안돼.' '모입시다! 플래카드도 만들고, 피켓도 만들어서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야구장으로, 회사 앞으로!'

씁쓸하고 서글픈 데자부다. 비난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이미 2011년과 2014년에도 목격했던 광경이다. KIA 타이거즈의 그 많은 팬들이 다 같은 뜻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좀 더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팀에 대한 애정'과 '팬심'을 앞세워 지금 구단과 김기태 감독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룹 본사에까지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과연 그럴 만한 일인가. 그리고 그런 행동이 정말 팀을 위한 일일까. 의구심이 떠나질 않는다. 이미 비슷한 모습이 여러번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들은 또 어떠했나. 따지고 보면 KIA만큼 팬들의 요구를 잘 들어준 팀도 없을 듯 하다. 지금까지 여러 감독들이 바뀌어 온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2009년 KIA 타이거즈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긴 조범현 감독은 2010년 주전들의 대거 부상 사태로 팀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자 팬들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16연패 때는 구단 버스를 가로막으며 시위를 했다.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원색적이고 흉악한, 협박과 저주의 말들이 퍼져나왔다. 무던한 조 감독은 "다 내 탓이지 뭐"하며 쓴웃음으로 버텼다.

2011년 KIA가 전반기에 1위를 기록하자 감독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잦아들었다. 후반기에 주전들의 부상악재가 겹치며 고전한 끝에 결국 시즌을 4위로 마감했다. 그래도 어쨌든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지만, 팬들의 원성은 다시 높아졌다.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 패한 직후 결국 조 감독은 전격 경질된다. 그룹 차원의 결정이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팬들의 비난 여론에 결국 프런트가 움직인 결과다.

그렇게 조 전 감독을 몰아낸 팬들은 후임으로 선동열 감독이 부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크게 환호했다. '무등산 폭격기, 광주의 자랑이 돌아왔다'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우리가 해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딱 3년이었다. 선 감독의 재임 3년간(2012~2014) KIA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팬들의 태도는 표변했다. 조 전 감독에게 그러했듯 원색적인 비난과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구단은 2014년 이맘 때 선 감독과 재계약을 발표한다. 여기에 팬들은 더 분노했다. 게시판과 기사 댓글 뿐만 아니라 선 감독의 개인 휴대전화로도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결국 선 감독은 "가족들에게까지 비난이 쇄도해 너무 힘들다"며 스스로 감독직을 내려놨다. 그 다음으로 선임된 이가 바로 지금의 김기태 감독이다.

2011년과 2014년, 그리고 2018년 가을의 씁쓸한 풍경이다. 김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팬들은 그것만이 팀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포함해 재임 기간에 팀을 3번이나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작년 우승 후 올해 5위가 충격일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야구다. 정규리그 5위의 성적을 비난한다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시즌 내내 사투를 벌인 선수들 또한 비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임창용의 퇴출도 그렇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의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만약 팬들이 원하는 대로 김 감독이 물러난다고 치자. 그건 또 다른 혼돈의 시작이다. 감독 인선이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연 어느 누가 이 팬들의 마음을 100% 채워줄 것인가. 지역 프렌차이즈 레전드, '광주의 자랑'이라고 불렸던 천하의 선동열도 버티지 못한 자리다.

새 감독이 필연적으로 겪는 혼선과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성적을 낼 때가 되면 또 '일부 팬'들은 '팀을 살려야 한다'며 퇴진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이런 것이야말로 오래된 폐단이자 악습이다. 따지고 보면 2007년 서정환 전 감독 시절부터 시작된 행동이다. 당시에도 구단 버스를 막아선 채 감독에게 사과와 퇴진을 요구한 적이 있다. 과연 행동들을 '팬심'으로 부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진정 팀을 흔드는 건 과연 누구의 손일까.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